하나님을 가리키는 개념들은 사람의 의식(意識) 범위를 넘어선다. 그분을 말하는 언어들은 영혼의 능력을 넘어서며, 영혼의 능력을 넘고 또 넘어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강한 헌신을 요구한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위험한 일로서 의식 자체를 넘어서는 힘이다. 그분을 말하는 것은 거의 자신 밖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얼마나 진지한 행동인지를 안다. 왜냐하면 기도의 언어는 도구가 아니라 그 언어가 가리키는 대상에 대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언어가 정신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는 우리가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93쪽)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고 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거룩하다는 말은 세속의 모든 것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대상과 일치가 된다는 뜻이기에, 또는 대상에 자기를 완전히 맡긴다는 뜻이기에 하나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세상을 초월한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고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못하고 ‘주’라고 불렀다. ‘그분을 말하는 것은 거의 자신 밖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하는 헤셸의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의 기도 영성은 실로 깊다. 깊다 못해 신비롭다. 이에 비해 한국교회 신자들의 기도는 너무 실용적이다. 헤셸이 문제 삼고 있는 도구화에 머문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런 태도로는 아무리 기도를 통해서 뜨거운 경험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기 심취이지 참된 기도라고 할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도 그런 기도는 이방인들의 중언부언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목사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실용적인 기도만 드렸고 또 그렇게 하는 건줄 알았습니다.
당장 눈 앞에 닥친 문제만을 위해 기도했고
그러다보니 기도가 제가 바라는 것들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네요.
의식 밖 존재로서 경험하는 하나님을 생각하자니 아득해지고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할지 감이 안잡힙니다. 훈련이 안된 증거겠지요.
훌륭한 영성가의 기도를 많이 읽고 배우라고 하셨는데
좋은 기도문들을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