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빛 가운데서는 우리의 최고 목표가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유치하게 보인다. 우리가 우상처럼 받들게 되는 자기란 무엇인가? 자기 속에 무슨 표현할 가치 있는 것이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가치가 있는 것이 있는가? 그분께서 많은 신경을 쓰시는 자기란 무엇인가? 하나님에 대한 명상에, 즉 자기가 아닌 것에 대한 명상에 집중할 때 자기는 증대된다. 우리의 최고 목표는 자기표현이 아니라 자기보다 위대한 것을 사모하는 일이다. (96쪽)
위 헤셸의 글이 과격해보이나 정곡을 찌르고 있다. 비록 유대학자의 글이긴 하나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도 귀를 기울일만하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취해야 할 태도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기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기’에 대한 관심을 줄이라고 한다. 아니 아예 포기하라고 한다. 우리는 자기를 우상처럼 받들고 산다. 우상은 헛 거다. 우상숭배는 헛 거의 절대화다. 그런 삶은 겉으로 다이내믹해 보여도 결국은 속으로 죽어간다. 우리의 기도가 만약 자기를 확대하는 데에 놓인다면 방향착오다. 그런 방향착오가 우리에게 비일비재다.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걸 이루어달라고 매달린다. 기도는 이런 자기중심성을 벗어나는 종교행위다. 그게 쉽지 않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기를 중심으로만 세상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으로라도 자기의 정체성이 풍요로워지면 좋겠으니 실제로는 오히려 훼손된다. 헤셸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기보다는 위대한 것을 사모하는 일”에 대해서 말한다. 위대한 것은 물론 하나님이다. 그럴 때만 자기의 토대가 잡힐 것이다.
이것만큼 또 어려운 일이 있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을 동물과 구분할 때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개개인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생각이 자기표현의 연속선상에 있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관심의 대상을 자기에서 위대한 것으로 옮겼다고는 하나 결국 자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대로 되어본 기도와 그에 대한 경험이 일천하여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기도 중에 비록 관심의 대상을 돌린다고 하지만 제 마음 속에는 늘 제가 중심이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