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매일 수행 정진하라는 제안에 겁을 먹는다. 내면의 통제와 외적인 학대를 혼동하는 그들은 극기보다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하려고만 한다. 그들은 규범보다는 이상을, 방향성보다는 희망을, 형식보다는 신앙을 갖기를 원한다. 그러나 목표와 그에 이르는 길은 오래 분리된 채로는 견딜 수 없다. 한 주간의 날들, 우리가 먹는 음식, 한 해의 절기들, 우리의 행위들, 이 모든 것들은 신앙의 미개척지들이다. 우리의 외적인 생활이 내면세계를 표현하지 않는다면 신앙심은 침체되고 또한 의도는 쇠퇴한다. (183쪽)
헤셸에 따르면 수행이 중요한 이유는 목표와 길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하나님과의 일치가 신앙의 목표라고 한다면 거기에 이르는 길을 가야 한다. 길을 가지 않은 채 그 목표가 이뤄지기를 기대할 수 없다. 길에 목표가 들어있기도 하다. 길을 가는 게 곧 수행 정진이다. 전문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목표가 있는 사람은 꾸준하게 연습을 해야 한다. 대충 하는 게 아니라 집중적으로, 집요하게 해야 한다. 예술행위도 그런데 하나님 공부야 오죽하겠는가. 이런 수행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다. 신앙을 마치 한번 당첨되면 벼락부자가 되는 복권 행위와 비슷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신앙이 수행 자체라는 사실을 빨리 눈치 채야 한다. 출가 수행자가 아닌 한에서 구체적인 수행은 참된 예배와 공부에 매진하는 게 최선이다. 이런 수행은 영혼에 산소를 공급하는 것과 비슷하다. 산소 없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듯이 수행 없이 영적인 생명도 유지되지 못한다. 이런 말에 실감이 가지 않는 이유는 영혼이 쇠퇴하거나 또는 살아난다는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무거운 책을 작게 쪼게어 읽게되니 한결 재미있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