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으로서의 목회가 무슨 뜻일까?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 전에 한국교회 신자들이 수행(修行)이라는 말을 별로 탐탁스러워하지 않는 이유를 먼저 짚어야겠다. 이를 확인하면 목사가 목회를 왜 수행의 차원으로 대하지 못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한국교회 신자들은 수행을 불교나 유교와 같은 동양 종교의 특성으로 여긴다. 그게 틀린 말은 아니다. 불교, 유교, 도교 등은 수행을 자기들 종교의 가장 큰 덕목으로 생각한다. 암자나 토굴에 들어앉아서 묵언 수행하는 일은 흔하다. 성철이라는 승려는 8년 동안이나 장좌불와(長坐不臥), 즉 눕지 않은 채 가부좌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수행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기독교에도 이런 수행의 전통이 없는 게 아니다. 중세기에는 사막의 교부들도 많았다. 수도원 제도는 기본적으로 수행을 기초로 한다. 수도자들은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 노력한다.
세속의 삶을 살아야할 신자들이 당장 출가해서 전문적인 수행자로 살기는 어렵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수행자의 영성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수행이 아니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 어떤 전문 가수가 있다고 하자. 자기의 노래 실력만 믿고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곧 아마추어가 되고 말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매일 기량을 연마한다. 하루만 연습을 게을리 해도 음감에 차이가 난다고 한다. 세상의 예술도 수행이 필요한데 영혼의 예술이라 할 믿음이야 오죽 하겠는가. 그냥 아마추어에 머물고 싶다면 수행을 포기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