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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예배의 두 번째 단락은 <말씀예전>이다. 여기서 핵심은 말씀읽기와 설교다. 사이사이에 기도와 찬송도 있다. 말씀은 세계 성서일과에 따라서 세 군데를 읽는다. 제1 독서는 주로 구약을, 제2 독서는 신약의 서신을, 제3 독서는 복음서를 읽는다. 제1 독서의 경우에 부활절 절기에는 사도행전이 주로 나온다. 성서일과에 나오는 시편은 성시교독 순서에 읽는다.
한국의 대다수 교회는 성서일과(lectionary)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예배 때의 성경봉독을 단순히 설교를 위한 장식품 정도로 여긴다. 더 근본적으로 교회력 자체를 외면한다. 예배의 모든 형식과 질서를 파괴하고 거기 모인 회중들의 회심과 영적 감동에만 초점을 맞춘다. 예전도 없고, 교회력도 없고, 성서일과도 없다. 상징도 없고 신비도 없다. 오직 교회 성장과 신앙의 뜨거운 경험이라는 실용성만 가득하다. 성경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는 설교가 비일비재한 한국교회 형편에서 성서일과 운운은 소귀에 경 읽는 격일지 모르겠다.
성서일과를 절대화하면 성령의 자유로운 활동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염려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한 시시비비를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일단 예전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으면 이런 논의는 제 자리에 머물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교회력과 성서일과를 외면하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그 중의 하나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때문인 듯 합니다.
종교개혁을 한 개신교 교회에서 로마 가톨릭의 예전을 왜 따르느냐고 반응을 하죠.
한국의 개신교 교회가 로마 가톨릭에 대해서 그리고 2천년 기독교 교회 역사를
얼마나 잘 아는지는 한국 개신교회 스스로 자문해야 할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을 형식주의라고 하면서 정작 한국 개신교회가 얼마나
형식주의에 매몰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도 성찰이 필요한데 별로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네요.
한국 개신교회가 완벽하게 예전 예배를 못 드린다 할지라도
최소한 말씀예전을 통해서 성경의 본문을 구약, 시편, 서신서, 복음서
이렇게 균형 있게 봉독하는 것만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