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절기헌금을 당장 폐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십일조 헌금은 그것보다 더 어렵다. 한국교회를 지탱하고 있는 토대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에 위기가 오면 한국교회 자체에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 한국교회가 십일조에 거의 목을 매는 방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시시비비 논란은 많아도 결국,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하는 것처럼, 십일조 문제는 반복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만다.
나는 일반 신자로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십일조에 대한 그들의 본심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일반 신자들이 앞장서서 십일조 폐지를 반대할지 모른다. 한국교회의 일반 신자들이 교회 운영에 보이는 열정은 목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당장 교회 재정이 파격적으로 줄어드는 걸 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당회 조직에 가담되어 있는 이들은 이런 점에서 훨씬 강한 입장을 보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십일조 제도가 폐기될 경우 실제적으로 재정적인 부담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기뻐할 수도 있겠지만, 헌금 행위에 대한 동기 자체가 실종될 수도 있다. 이건 문제다. 신앙적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능사는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십일조 문제의 완전한 해결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최선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헌금 문제는 그것만 독립되어 있는 게 아니라 기독교 신앙 전반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신앙이 전체적으로 율법적이어서 헌금도 그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복음의 세계에 눈을 뜬다면 이제 헌금도 율법이 아니라 복음, 또는 은총의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게 갑자기 되지는 않는다. 십일조가 오랜 세월에 걸쳐 한국교회에 종교적 이데올로기로 자리를 잡았듯이 거기서 벗어나려면 그런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혁명적인 변화가 오든지. 각각 교회 형편에 따라서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해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