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폐성
설교자들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는 사태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좀더 정확하게 알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이 없으면 설교자의 영성은 결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사실 성서의 진술도 모두 그런 사태를 전제하고 있다. 기독교의 기초 교리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예수의 성육신,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 그리고 세례와 성찬과 예배, 그리고 교육과 봉사와 선교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이다. 그런 것을 아는 것이 하나님 자체를 아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속성이 기본적으로 은폐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십자가 사건을 보라.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죄가 용서받고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다. 그게 기독교 교리다. 이런 믿음은 옳다. 문제는 그것이 왜 옳은지에 대한 대답이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면 로마 형법인 십자가 처형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할 필요는 없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면 말씀으로 구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구원이 완성되는 길이 있었는데도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눈에 아주 복잡한 길을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조롱의 대상이었던 십자가에 처형당하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여전히 은폐되어 있다는 뜻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것이 은폐되어 있다. 아직 답이 완료되지 않았다. 인간이 무엇인지, 생명이 무엇인지, 시간과 공간이 무엇인지 부분적으로만, 간접적으로만 알지 총체적으로는 알지 못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 게 세상의 이치다. 그걸 우리는 신비라고 말한다. 세상이 이렇다면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바울도 현재 아는 건 부분적인 것이고, 거울로 보는 것과 같고, 종말이 와야 전체적으로, 얼굴을 맞대 보듯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교자는 자신이 다 파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폐성 앞에서 절망해야 한다. 그때부터는 그는 하나님의 계시에 실제로 마음을 둘 것이다.
은폐라는 말...
사실 군대에 있을 때 들었던 '은폐, 엄폐' 라는 말 이외에는
거의 접해보지 않았던 단어였습니다. 다비아사이트에 들어오기 전까지는요...ㅎㅎ
나름 적지않은 신앙서적들을 읽었는데, 어느 곳에서도 적극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은폐성을 이야기하는 책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을 규정하려고 했지...
그래서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고 있는데
숨어계신다니 앞뒤가 맞지 않네...하구요.
그러나 이제는, 삶이라는 것이
은폐되어 있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