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경험에 대해
목사의 설교는 하나님에 대해서 질문하는 행위다. 여기서 질문은 단순히 회의하거나 의심한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직면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직면할 때는 당연히 질문이 나온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 하나님보다 더 큰 하나님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하나님은 누구이고, 이후의 하나님은 누구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하나님이 있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간 경험이 각각 다르다는 뜻이다.
우선 목사는 하나님을 직면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를 알아야 한다. 일반 신자들도 마찬가지지만 설교하는 목사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안다고, 또는 만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험이나 고백의 진정성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잘못된 경험이 많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사이비 이단 교주들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하나님 경험을 절대화한다.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벌어진 신학논쟁과 이단논쟁도 근본적으로는 하나님 경험에 대한 것이다. 서로가 자신의 경험이 옳다고 주장한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그렇게 싸웠고, 신약의 사도들이나 그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교부들도 그렇게 싸웠다. 지금 나는 여기서 신학논쟁 자체를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직면한다는 게 무엇인지, 즉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하나님을 설교해야 할 목사들이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한 것뿐이다.
나는 역설적이지만 목사들이 하나님을 경험하기가 일반 신자들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게 불행한 일이다. 목사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그런 목사의 설교를 듣고 그런 가르침을 받아야 할 일반 신자들에게도 그렇다. 일단 목사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목사들이 모여도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노회나 총회 모임이 있다고 하자. 수백 명, 수천 명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서 주로 먹고, 마시고, 선거하고, 회의를 한다. 이런 모임에서 삼위일체와 하나님 나라, 또는 루터의 두왕국설 등과 같은 주제의 특강을 듣고 질문하며 대화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상투적인 예배와 설교만 수행될 뿐이다. 하나님에 관해서 실제적으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니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