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축소
전문 산악인이 어떻게 에베레스트 산에 압도당하는지에 대해서 내가 전문 산악인은 아니지만 상식적인 차원에서 몇 가지만 말하겠다. 그것은 목사의 영성을, 즉 하나님을 직면함으로써 확보될 수 있는 목사의 영적 실존을, 더 정확히는 기독교인의 실존을 간접적으로나마 알아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높은 산에 오른 사람들이 똑같이 느끼는 감정은 자신이 너무 작다는 사실이다. 크고 높은 산 앞에 서면 자기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의 느낌을 받는다. 일상에서는 자기가 작다는 느낌을 많이 받지 못한다. 수백 미터 높이의 건물 앞에서 압도당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8천 미터 이상의 산 밑이나 정상에 섰을 때 느끼는 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기 축소가 영성의 단초다.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바로 자기 축소라는 말이다. 자기 축소는 사람의 본성에 위배된다. 사람은 인격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자기를 확대하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 목사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겉으로는 자신을 낮추는 것처럼 보여도 그 내면에는 자기를 확대하려는 욕망이 강하다. 목사는 회중들 앞에 자주 서야 하기 때문에 이런 위험성 앞에 훨씬 자주 노출된다. 특히 큰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들은 더 그렇다. 그 사람이 유난히 이기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본성에 충실한 사람이어서 그런 거다. 이런 점에서 목사로 산다는 것은 영적으로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축소가 계속되어 완전히 무(無)로 떨어지는 게 바로 구원이다. 자기가 없는 상태가 곧 하나님과의 완전한 일치가 아니겠는가. 그럴 때 온전한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자기가 무의 상태로 들어가면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걱정하지 않는다. 그럴 때만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가 가능하다. 이런 무화(無化)가 살아 있는 동안에 성취되기는 힘들다. 힘든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다. 그런 무화에 이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상태를 경험한 분이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이 참 안스럽다는 생각이 커져갑니다
또한 본인이 갇혀 있는지도 모른채 목회하는 그런 목회자 밑에서 신앙생활의 연조를 쌓아가는 신자들도 안스럽고요
건강한 목회자를 만나는것도 기도의 우선순위가 되어야겠군요
자기축소, 자기부인-> 실존의 무화 -> 그분과의 연합-> 온전한 신뢰 ->실존의 짐과 염려부터 자유!
그 시작이 자기부인 자기 축소요
이 싸움이 철옹성같은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니, 원함은 있으나 매일 실패하는 자신의 무능에 매일 절망과 탄식만 하다가소천하게 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