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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에베레스트 정산에 올라간 사람은 그곳에 오래 머물 수 없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두 시간 이상은 어려울 것이다. 그게 참으로 허무한 일이긴 하다. 정상에 오르려고 기울인 노력에 비하면 그 시간이 너무 짧다. 여러 날은 아니라 해도 만 하루 정도 머물면서 정상에서의 희열을 누릴 수 있으면 오죽 좋겠는가. 그런데 올라가자마자 곧 내려와야 하다니.
하나님 경험도 이와 비슷하다. 절대타자, 누미노제, 궁극적 관심, 만사를 규정하는 현실성, 종말의 힘, 창조의 능력, 부활의 영 등등으로 표현되는 하나님 경험이 계속해서 그대로 유지되는 건 아니다. 그런 경험은 일시적이고 오히려 일상이 지속적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나님을 늘 생생하게 경험하는 게 아니다. 물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도 하나님은 일상을 통치하지만 우리는 민감하게 느끼지는 못한다. 오히려 하나님 없는 경험을 훨씬 많이 한다. 서로, 또는 스스로 싸우고, 속 끓이고, 화내고, 섭섭해 하고, 허무해하고, 지루해한다. 어쩔 수 없다. 인간은 실낙원의 현실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걸 억지로 해결하려 들면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목사님 바르트 강독에서 사용하시는 책이 뭔지 몰라..
찾다가 못 찾고 '하나님의 흔드심:칼 바르트의 성화론'(이정석/새물결플러스)라는 책을 샀는데..
어제 책 펼치다가 우연히 "거룩의 성경적 개념은 루돌프 오토의 '신비한전율'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거룩의 개념은 언약의 맥락 안에서만 올바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글귀를 접했습니다.
이것이 지은이의 생각인지 아니면 바르트의 생각을 정리한건지는 모르겠어요.
처음부터 읽은 게 아니고 그냥 펼쳐진 페이지여서..
요 앞의 글 읽다가 생각나서 몇 자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