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대해 말하라

 

지금까지 에베레스트 등반을 비유 삼아 하나님 경험에 대해서 설명했다. 산에 압도당하는 산악인들처럼 목사는 하나님에게 압도당한다는 사실을 전하려는 것이었다. 산은 신보다 아주 짧은 획 ‘-’ 하나가 더 붙었을 뿐이다. 어쨌든지 목사는 줄기차게 산을 오르듯이 신에게 가까이 가고, 다시 산을 내려오듯이 세상 안으로 들어가야 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 경험은 설교자에게 당위다. 그것 없이는 설교자로 살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설교 행위는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뻔한 말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어떤 목사들은 하나님을 설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설교 시간 내도록 쏟아낸다고 해서 하나님을 전하는 게 아니다. 대개는 하나님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라고 강요하거나 하나님을 만났을 때 얻게 되는 은혜에 대해서만 전한다. 이는 마치 에베레스트를 올라가본 적이 없이 산행에 대해서 들은풍월만 전하는 사람과 비슷한 형국이다. 이 사람은 청중들에게 산행을 통해서 얻게 되는 유익을 그럴 듯하게 나열한다. 부부가 함께 산행하면 금슬이 좋아진다는 방식으로 우스개를 섞어가면서 솔깃하게 말할 수 있다. 이런 강연에 청중이 아무리 뜨거운 반응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산 자체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가 에베레스트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설교자는 무엇보다도 우선 하나님을 설교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일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만을 설교하면 청중들이 설교를 어려워한다고 말이다. 옳은 말이다. 청중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이 적거나 없다. 자기에게만 관심이 있다. 이게 기독교인들의 자기모순이자, 자기 분열적 모습이다. 자기에 대한 관심을 줄여야만 하나님 경험이 가능한데, 끊임없이 자기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한다.

 

이게 회중들의 진면목이라 하더라고 설교자는 회중들의 영적 눈높이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곤란하다. 회중을 핑계로 하나님을 설교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압도당한 경험이 없다는 증거다. 내 생각과 경험에 따르면 회중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설교자가 분명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리고 거기에 영적 진정성이 있으면 결국 회중들도 그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문제는 결국 설교자의 하나님 경험에 어느 정도의 깊이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설교자는 자기가 마실 영적 샘물의 깊이를 더 깊게 파는 일에 우선 매진해야 할 것이다.


profile

사띠아

2014.08.02 08:35:22

방글라데시에서부터 친하게 지내온 두 부부가 있습니다. 대사관 직원과 건강기기 판매 법인장이지요.
인도에 와서 또 만나게 되어 그 교제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 서로가 휴가후 만나서 한국에서 가져온 홍어회와 곁들여 1잔을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신앙 문제에 이르러 건강기기 판매법인장이 요즘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신부 탓을 했습니다. 마음이 답답해서 신부에게 예수님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더니 신부도 자신도 잘 모르고 알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말듣고 낙심하여 교회를 나가는 것을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전하면서 이 말을 꺼낸 분은 어떻게 신부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펄펄 뛰었습니다. 신부도 펄펄뛰는 이분도 이해가 됩니다. 신부도 솔직하고 열받은 이분도 '신학공부'를 몇 쪽 넘기다가 도저히 아니다는 생각에 반납한 그 세계에서 솔직한 의견입니다. 법학자로서 하나님, 예수님, 구원, 성경 구절 모두 똑똑 부러지게 정리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나도 잘 모른다 하니 뒤집어진거지요.
반면 지난 주 휴가를 내어 히말라야 산 자락에 가서 시린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기꼬'를 다시 읽은 선교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고즈넉하면서도 생명력 풍성한 곳에서 기꼬를 다시 읽으니 전에 보이지 않던 것,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더라고 합니다. 제가 아는 척 한 마디 했죠. 생명에 대한 관심과 깨달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단초일거라고. 신학공부도 읽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도 영적 샘물을 파는 작업이 마냥 더디기만 합니다. 그러나 가렵니다. 오아시스를 바라며 사막을 걸어가는 뚜벅뚜벅 저 낙타처럼 저의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주님의 긍휼이 있어 정상에 오르는 기쁨도 넘쳐 흐르는 사막의 샘에 발을 담글 날도 있을 것을 믿으면서.
profile

정용섭

2014.08.02 13:18:24

사막을 걷는 낙타라....

그 이미지가 기독교 수도자들에게 딱이군요.

정한 방향으로 계속 가기,

뚜벅뚜벅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걷기,

걷는 것 하나에 집중하기,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짐 지기 ...

그곳에서 사띠아 님을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profile

사띠아

2014.08.02 19:25:30

목사님은 언제나 적확하십니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짚어주십니다.

특히 짐지기는 은근슬쩍 넘어가고 싶었는데 그러지 않으시는군요.

일상의 영성이 여기서 나오는데 

이것을 기피하고 히말라야 요기가 되고픈 저의 속내를 꼭 집어내신 듯하여 찔립니다. **^


더위에 강건하세요. 

profile

클라라

2014.08.02 18:36:50

선교사님, 오랜만에 오셨어요.

평안히 지내시지요?

여긴 오늘 태풍소식이 있어서 그런지

날은 후덕지근한데 저녁 때 되니 그래도 바람은 선선하네요. 

 

그리고..

위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을 모른다, 알아가고 있다고 하신

신부님 말씀인데요, 저는 무진장 호감이 가는걸요?^^

profile

사띠아

2014.08.02 19:31:50

라라 집사님. 

그렇지요. 

일평생 예수님을 섬겨사신  마더 테레사 수녀님도 예수님을 잘 모르신다고 했다고 혼줄 났다지요?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예수 더 알기 원함은 ..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아마도 그 신부님과 라라 집사님 그리고 저도 그 길을 가고 있는 도반인 듯합니다. 



profile

클라라

2014.08.02 22:08:35

저도 선교사님 말씀에 백번 동감이어요.

그러고보니까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과 우리 평생의 소원, 예수를 더 알기 원함과는

不可分離의 관계, 천생 찰떡궁합으로 보여지는걸요?^^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道를 道라 할 수 있는 그 道는 常道가 아니다(새로운 道이다)

이름을 이름이라 부를 수 있는 그 이름은 常名이 아니다(새로운 名이다)

 

글구.. 도반이라는 말씀 감격이어요. 

저도 사막을 걷는 낙타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진리를 향해 걸어보겠습니다. 

profile

여름비

2014.08.04 19:31:22

자기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저 자신의 자기모순, 자기분열적 모습을

바라보면서 실망도 많이 하지만 또 때로는 이 모순과 분열이 없다면

과연 나아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면서 위안을 합니다.

모순과 분열과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만  고민하고 깨닫는 걸지도

모른다면서요.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루터의 이 고백은  실패를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로

들려 힘이 됩니다.

 

*금술 ㅡ> 금슬

 

profile

정용섭

2014.08.04 22:50:56

드뎌 오자 하나 잡아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자기모순, 자기집중 등등은

죽을 때까지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을 겁니다.

제법 신학훈련과 영성에서 아는 게 좀 있고

나름 어느 정도 자기 절제가 가능하다고 여기는 저도

그런 부분에서 자랑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바울도 그와 비슷한 고백을 하긴 했습니다.

자신을 그대로 '렛 잇 비', 그냥 내버려두고

주님에게 집중하다보면 이런 문제에서도 진도가 나갈 겁니다.

profile

또다른세계

2014.08.07 08:39:29

댓글에 댓글을 달면...

목사님께서 또 댓글을 다시는 수고로움이 있을 것 같아

댓글에 댓글을 달지 않는 것이 나름 제 원칙이었는데..ㅎㅎ

'자신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주님께 집중하다보면

 자기모순, 자기집중과 같은 문제에서도 진도가 나갈 것'이라는 

목사님 말씀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아 이렇게 댓글에 댓글을 남깁니다.


청년의 시절에 누군가가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면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때로는 교만(?)하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비록 지금쯤 천사가 되지는 못했을지라도, 미약하나마 하나님께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 길이

평생 걸어가야 하는 정진의 길임을 알기에 지금이라도 바른 길을 걷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아침이었습니다. 


매주 업데이트 되는 설교와 매일 업데이트 되는 묵상의 말씀을 통해서도

큰 은혜를 받지만, 매일 성실히 달아주시는 댓글을 통해서도 이에 못지 않은

은혜를 받고 있다는 말씀을 한 번쯤은 드려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나름의 원칙(?)을 깨고 댓글에 댓글을 달아봅니다.


오늘 하루도 주의 생명이 충만한 하루 되십시오.




 

profile

정용섭

2014.08.07 14:02:23

나의 수고로움이라, 음

다비아 활동이 제게는 일종의 목회랍니다.

신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렇게 대글로나마 대답을 하는 건

목사에게 당연하면서  즐거운 일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면 목사 때려쳐야겠지요.

오늘 부슬부슬 비가 내리면서 기온도 뚝 떨어져

창문을 닫지 않으면 안 될 정도네요.

 

List of Articles
No. Subject Date Views
3446 목사공부(104)- 영성에 대한 오해 Aug 07, 2014 1675
3445 목사공부(103)- 시인의 영혼 Aug 06, 2014 1391
3444 목사공부(102)- 영혼에 대해 Aug 05, 2014 1487
3443 목사공부(101)- 시편 23편 Aug 04, 2014 2851
3442 목사공부(100)- 시인이 되라 Aug 02, 2014 2007
» 목사공부(99)- 산에 대해 말하라 [10] Aug 01, 2014 2023
3440 목사공부(98)- 산이 부른다 [6] Jul 31, 2014 1880
3439 목사공부(97)- 하산의 위험 Jul 30, 2014 1493
3438 목사공부(96)- 하산 [2] Jul 29, 2014 1570
3437 목사공부(95)- 에베레스트 정상 [2] Jul 28, 2014 1800
3436 목사공부(94)- 가깝게, 멀게 [4] Jul 26, 2014 1876
3435 목사공부(93)- 산의 허락을 받아야 [2] Jul 25, 2014 1769
3434 목사공부(92)- 생존의 바닥 경험 Jul 24, 2014 1720
3433 목사공부(91)- 자기 축소 [2] Jul 23, 2014 1836
3432 목사공부(90)- 압도당함 [6] Jul 22, 2014 2213
3431 목사공부(89)- 산악인과 설교자 [3] Jul 21, 2014 1923
3430 목사공부(88)- 교회 성장 이데올로기 Jul 19, 2014 1600
3429 목사공부(87)- 하나님을 모르는 목사 Jul 18, 2014 1948
3428 목사공부(86)- 하나님 경험에 대해 Jul 17, 2014 1607
3427 목사공부(85)- 몸과 영으로서의 인간 Jul 16, 2014 1526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