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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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청도 신지리 운남고택에 거주하면서
전통장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계신
장명호 박사댁을 찾아갔습니다.
오후 2시에 도착해서 5시 조금 지나서까지 머물면서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또 서로 대화를 나누고,
웃고 먹고 마시면서 보낸 순간을 다시 생각하니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들을 카메라에 제가 다 담을 수는 없었고,
일부 몇 장면만 담았습니다.
들어가는 문입니다.
고리에 자물쇠가 달려 있네요.
장 박사님이 머물고 계신 사랑채입니다.
외편 여자 아이가 뛰어 오르고 있는 곳이 대청마루인데,
우리는 거기서 차, 과일 등을 대접 받았습니다.
오른쪽 중간에 선물로 가져간 키친 타올이 있네요.
장 박사님은 치킨과 키친을 자꾸 혼동하시더군요.
가장 큰 어른인 운강의 고택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국가 지정 고택이라서 길까지 잘 깔아주었습니다.
만석꾼이었다는데,
돈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벌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운강 어른이 기거하던 사랑채입니다.
당시 양반집의 구조와 쓰임새에 대한 설명을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변소의 여러 변형어가 다 의미가 있다는데,
제가 다 기억은 못하겠네요.
가까이서 설명하고, 또는 듣고, 사진 찍고...
부자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꽃담 장식이라고 하네요.
사랑채와 안채가 이 꽃담을 경계로 나뉩니다.
신주를 모시는 곳이라고 합니다.
주변 분위기가 으스스 하더군요.
부잣집 안채입니다.
우리가 볼 때 왼편이 곳간 열쇄를 갖고 있는 안채 마님이
오른 쪽이 며느리가 기거하던 방입니다.
안채 뒤로 가면 넓은 뒷정원이 있고요.
며느리 방 뒤쪽에 난 툇마루 천정에 횡으로 놓인 굵은 막대기가 있는데,
부정을 저지를 경우 며느리는 거기에 목을 매야 한답니다.
하루종일 디딜방아만을 찧는 종들이 있을 정도로 이 집이 부자였다고 하네요.
이제 본격적으로 장에 대해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5년 묵은 장도 있다네요.
우리는 모두 직접 간장과 된장을 맛보았고
직접 담그신 간장과 된장을 각자 필요한 만큼 사왔습니다.
택배로도 배송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장맛이 장난이 아닙니다.
특히 한국 음식에는 간장이 중요하다는 군요.
여기에 동행하신 교우들 중에는
대학교에서 경영학 교수로 계시지만 빵 제조에 일가견이 있는 분,
그리고 회사를 경영하고 있지만 효소와 약술 등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 있습니다.
된장, 빵, 효소 등이 다 균과 연관된 일이군요.
지구에 균이 없으면 생명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뜻이겠지요.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 찍고 헤어졌습니다.
장 박사님이 안고 있는 강아지는
잘 때도 같이 잔다고 합니다.
부인 되는 분은 안채에서 주무시겠지요.
개가 정말 순하디 순하더군요.
우리가 머무는 동안 개짓는 소리를 못 들었습니다.
박사님은 성대가 얼마나 좋으신지
세 시간 동안 계속 말씀하시는데도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으셨습니다.
저희를 환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샘터교회의 번개팅이라는 군요. 샘터교회의 교인들을 보니 모두 행복해보였고 부족한 접대에도 기쁘게 놀다가신
목사님과 샘터교회교인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사진을 보니 제가 옷을 좀 잘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화장실이라고 부르는 곳을 옛날 일반 가정에서는 변소 또는 정낭이라고 불렀지만 이런 큰 저택의 경우에는 구별된 이름이 있습니다. 대감마님이 볼일보는 곳은 측간, 안방마님이 볼일보는 곳은 뒷간, 종들이 볼일보는 곳은 통시라고 합니다.
측간은 화려한 장식이 있고 뒷간과 통시는 비슷하게 생겼습니다만 근본적인 차이는 변소물이 튀지 않도록 되어 있으면 뒷간이고 그대로 튀도록 되어 있으면 통시입니다.
우리 어린 시절 변소에 가면 변소물이 튀어 낭패를 당한 경험이 많았습니다.
그날의 하이라트, 샘터교우님 중 한분이 변소물 튀는 걸 방어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여 배워놨습니다.
볼일본 후 덩어리가 낙하하는 동안 히프를 우로 피하면 우피, 좌로 피하면 좌피, 앞으로 피하면 전피, 뒤로 피하면 후피,
위로 폴짝 뛰면 상피랍니다.
손님들이 제게 주고가는 지식도 으마으마 하답니다.
다비안 여러분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