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글을 보면 이땅에서의 삶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정작 내용은 이땅에서의 삶이 가치가 없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글을 읽을 때 마다 '말장난' 같아 보입니다.
내용은 그런데 나오는 말은 아니라고 하니까요
그 사이에 균형을 잡기가 너무 힘든 거 같습니다.
하늘의 생명 이 세상의 생명 변증법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변화된다는 말이
제겐 왜이리 어렵게만 느껴질까요?
이 글에 답변을 저도 기다렸습니다. ㅎㅎ
목사님 말씀처럼, 저도 이 행성에서의 삶이 너무 짧고 덧없기에 짧은 생을 마치고 내가 돌아갈 별이 있지 않은가? 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
확실한건 돌아갈 별이 있거나 없거나, 이곳은 짧은 여행지와 같은 곳이라는 점에는 틀림이 없어보입니다.
이런 인식에서 우리가 하늘나라에 시민권이 있다는 말은 일견 납득이 갑니다.
그렇기에 언젠가 읽은 도덕경인지 장자인지에서처럼 유유히 세상을 노닐다 가면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끔, 문득 퇴근길 차창밖으로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며 가슴벅차 환희에 젖어들기도 하고, 직장에서 상사랑 싸우기도 하고, 가끔 친구들이랑 술도 퍼마시며 신나게 놀기도하고, 또 가끔 음란한 유혹에 빠져보기도 하고 이러면서 사는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데, 다비아에 오는 건 목사님이 말씀하신, 청지기의 삶 ... 복음이라는게 무엇이기에 바울은 죽을만큼 복음을 전파했을까요?
복음을 알아야 하고, 알면 전파해야하는 게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에게 주어진 의무라면 저도 그 의무를 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
깨달음도 인연따라 온다는데, 아직 인연이 아니라서 못깨닫는 것일까요...
근데, 이땅의 생명, 하늘의 생명 이라는 개념이 낯설어서, 일단, 교회고 어디고 들어보기 힘든 단어라서, 공명이 일어나기 더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스테이트루 님의 글도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장자의 소요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해주셨네요.
천상병의 시도 그런 이야기를하는 거구요.
저도 지금 그런 태도로 이 세상을 소요하듯이
소풍을 즐기듯이 삽니다.
그런 건 삶의 지혜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거니까
스테이 님도 그렇게 사는 게 좋습니다.
복음 안에서 산다는 건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몇 가지 관점이 여기서 필요합니다.
1) 마음 비우고 소풍처럼 세상을 살기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2) 이 세상은 악이 여전히 기승을 부립니다.
3) 소요와 소풍 너머의 영광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4) 영광에 이르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너무 교리적인 설명이지요?
끝으로 하늘 생명이라는 단어만 설명하지요.
성서가 말하는 하늘은 우주 공간 어디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궁극적인 생명이 은폐된 곳을 가리킵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열반이라고 해도 좋아요.
플라톤 개념으로는 이데아겠지요.
우리 기독교 신앙으로는 부활의 세계입니다.
이런 개념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좀더 공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공부만으로 해결된다는 건 아니고요.
공부는 우리의 선입견을 흔들어주는 과정이라서
성령, 또는 계시에 대한 공명을 가능하게 해주는 통로는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존재 님의 닉네임이 범상치 않습니다. ㅎㅎ
정말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사실 나도 기독교의 가르침이 이해 안 될 때가 많고,
내가 말하면서도 잘 알지 못하고 말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걸 다 알거나 확신하는 사람은 없답니다.
그게 피조물의 피할 수 없는 실존입니다.
그러면 뭐하러 설교하고 강의하냐,
그래서 사람들이 더 헷갈리게 하냐, 하고 말하실지 모르겠네요.
모른다거나 확실하지 않다는 말은
세상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는 뜻이지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확신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듣는 사람과의 공명이 일어나지 않을 때가 많은 거지요.
'존재'라는 낱말이 있어요.
매일 노래방이나 가고 부동산 투기만 하는 사람은
'나는 여기서 숨쉬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한없는 자유를 누린다.'는 말에
아무런 느낌이 오지 않는 거와 비슷합니다.
존재 님의 고민을 해결하려면 많은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간도 필요하구요.
이 세상의 삶에 대해서만 말씀드릴 게요.
가장 핵심적으로는 삶이 결국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거에요.
그러니 허무하고 무의미한 거는 분명합니다.
단지 죽는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세상에서의 삶이 그것 자체로는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살아도 마찬가지에요.
기독교인은 그런 점에서 하늘나라에 시민권이 있다고 믿습니다.
더 이상 세상에 살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바울은 가능한 세상을 빨리 떠나고 싶어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머문다고 했어요.
그게 바로 복음 전파지요.
기독교인의 삶은 온전히 복음전파의 사명을 가진 사람으로,
즉 청지기로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변증법적으로, 새로운 생명으로의 변화 등등은 그냥 질문으로 남겨 두세요.
주의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