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공부
목사에게 공부는 물론 신학이다. 그런데 신학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기초는 철학이다. 철학은 신학만이 아니라 모른 학문의 기초다. 상당히 많은 신학생들과 목사들이 신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신학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철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철학을 먼저 전공한 다음에 신학을 공부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다. 철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철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도 아니다. 동서양 철학자들의 연대기를 뚫어보고, 그들의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그가 철학의 세계로 들어갔다는 보장은 되지 않는다. 어떤 목사가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내용을 샅샅이 연구했다고 해서 성서의 세계로 들어갔다는 보장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여기 수박 한 덩이가 있다. 수박 앞에서 몇 가지 태도를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수박의 겉모습만 본다. 그는 이렇게 수박을 설명할 것이다. 수박은 농구공처럼 생겼는데, 바탕은 녹색에다가 아래위로 검은 줄무늬가 그어진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수박을 아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은 수박 겉을 혀로 핥았다. 앞의 사람보다는 수박에 가깝게 갔을지 모르지만 이 사람도 수박을 아는 게 아니다. 또 한 사람은 수박의 한 가운데를 잘라서 보았다. 수박 안은 밖과 비교할 때 천지차이다. 붉은 살과 검은 씨가 촘촘히 박혀 있다. 이 사람은 수박의 겉과 속을 다 보긴 했지만 수박을 아는 게 아니다. 또 한 사람은 수박을 직접 먹었다. 눈으로 보는 거와 직접 먹어보는 거는 완전히 다르다. 앞의 세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차원에 머물러 있으며, 마지막 사람만이 수박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목사들의 하나님 경험도 차원이 다 다르다. 수박을 먹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남의 이야기만 듣고 수박 맛을 전하려는 것처럼 목사들도 하나님 경험이 없이 하나님을 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의 말이 공허한데도 불구하고 상당한 회중들에게 어필하는 이유는 회중들도 수박을 맛보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그러니 누구든지 표면으로나마 진정성을 갖춘 포즈를 취한 채 큰 소리 치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어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것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잠시는 회중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길게는 갈 수 없다. 수박을 직접 먹어보는 경험이 신학의 경우에는 철학공부로 주어진다. 철학공부가 없는 경우에 목사는 신학공부를 통해서 기껏해야 교리 선생이, 즉 세례 공부를 이끌어가는 수준의 선생이 될 수 있을 뿐이다.
행복한 님은 외국에 살다가 오셨나 보군요.
한국은 사회나 교회나 경쟁력 제고가 우상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버텨내지 못하면 낙오가 되기에
대박 터뜨리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함께 가난해지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거 같은데
그게 뭐 운동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
일단 각자가 삶의 근본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겠지요.
공부에 재미를 느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