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존재
신학공부에서 철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이제 몇 가지 구체적인 항목으로 보충하겠다. 먼저 하나님의 존재론이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무신론) 존재한다는 사실(유신론)이 대전제다. 하나님의 존재가 전제되지 않으면 모든 가르침은 모래 위의 집이다. 성경도 유신론을 전제한다. 그렇게 듣고 배운 탓인지 기독교인들은 무신론에 적대적이다.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이유도 그들이 무신론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하나님 문제를 유무신론으로 끌고 가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기 때문이다. 그 인식의 차원에 따라서 유무신론 논쟁이 공허질 수 있다.
많은 목사들의 머리에는 실체론적 형이상학에 근거한 하나님의 존재론이 자리하고 있다. 하나님을 깊은 산속의 산신령쯤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산신령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간과 비슷한 어떤 존재쯤으로 여긴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이건 성경만이 아니라 고대인들의 일반적인 세계 이해이다. 고대 헬라철학도 존재하다는 것을 실체(substance)로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작은 실체를 원소라고 보았다. 원소라는 실체가 세상을 구성하는 본질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이런 실체론이 지배한다. 우리의 먹을거리로부터 시작해서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실체다. 과정철학과 양자역학에서 이런 실체론은 설득력을 잃는다.
이 문제는 과학과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지 않아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의 실체들을 찾아보라. 사과, 나무, 새, 산, 강, 지구 등등이다. 그런 것들이 세상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일정한 시간 안에서만 존재한다. 어제 마트에서 사온 사과를 오늘 아침에 먹었다면 그 사과는 어제에만 있었고 지금은 없다. 지구도 마찬가지다. 45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는 존재하지만 앞으로 45억 년 후에는 없어질 것이다. 모든 사물들은 이렇게 일시적으로만 존재한다. 하나님을 시간에 절대적으로 지배받는 존재로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