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관련링크 : |
---|
어젯밤, 꼭 뵙고 싶었던 석곡 이규준 선생을 따르는 소문학회 분들을 만났습니다. 소문학회는 매년 10월 마지막주 일요일에 석곡묘소를 참배하는 행사를 개최해 오고 있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포항에서 석곡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소문학회는 전근대에서 현재까지 연속성을 가지고 전통의학의 맥을 유지해온 어쩌면 유일한 학파라 할 수 있습니다. 주창자 석곡 이규준선생(1855~1923년), 스승인 무위당 이원세 선생(1903~2001), 그리고 현재 여러분야의 학자, 한의사, 학생들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소문학회분들은 허준, 이제마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이규준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날 세분의 학자들이 발표했는데, 그중에 세명대 오재근 교수께서 "석곡 이규준은 중국, 일본의 의학전통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국전통의학을 확립하고 자신이 내세운 본초이해방법을 토대로 처방을 구성하고 임상경험을 축적한 의학자이자 의가였다"고 했습니다. 특히 "동시대에 살았던 함흥 출신의 이제마에 비해 영일(현재 포항)에 사셨던 석곡선생은 이제마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인물임을 강조하고 후학들의 노력이 많이 요구된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석곡선생과 약간의 관계가 있습니다. 어릴적 살았던 외딴산골 집 인근에 석곡선생의 묘소에 자주 소를 몰고가서 풀을 뜯어 먹였는데, 그때는 어느분의 묘인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다니던 길목에 '약전'이란 마을이 있어 그 이름이 궁금했습니다.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더니, "옛날에 유명한 한의사가 있었다고 들었다"며 "그 때문에 그렇게 불렀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 향토사학자 황인 선생께서 이규준 선생을 고증하는 작업과 소문학회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그의 저서를 정리하여 보관하는 석곡도서관이 지어지고, 약전마을과 석곡선생, 그분의 묘소 등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달성서씨 문중활동을 하면서 석곡선생의 활약에서 저의 종친이신 당대 문화예술계의 거목 "석재 서병오(1862~1936)" 선생과의 뗄수 없는 관계를 알게되어 더욱 친근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제 석곡연구발표를 감히 평한다면, "석곡연구는 이제 시작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봤습니다. 그분의 유학, 의학, 천문학 등 다방면의 연구와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 보다 본격적인 연구활동이 절실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전혀 모르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런데도 뭔가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군요.
이렇게 누가 알아주던 않던 상관없이
꾸준히 참된 것을 향해서 가는 분들이 있기에
이 세상이 이런 정도나마 버텨내는 것 같습니다.
귀한 모임을 가지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