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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9)
앞의 이야기를 가장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될 것이다. 죽으면 ‘나’는 완전히 없어지는 걸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바로 ‘나’의 해체에 있다. 해체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우선 ‘나’가 누구, 또는 무엇인지를 질문해야 한다. 즉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을 주로 인간관계에서 경험한다. 아무개의 아내나 남편, 부모나 자식, 직장 상사와 동료, 스승과 제자 등의 관계를 통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확인한다. 또는 자기가 행한 업적이 그런 통로가 되기도 한다. 시인들은 자기가 쓴 시를 통해서, 화가는 그림을 통해서, 목사는 교회 활동을 통해서 자기가 누군지를 확인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이런 관계와 업적이 송두리째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답이 나왔을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에 그런 관계와 업적을 상대화하는 훈련이 그 답이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문제는 그것을 상대화하는 게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오히려 그것을 강화하는 걸 인생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