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16)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말은 지금 내가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육체적 고통이 따르면 그 순간에 말이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내가 소멸되는 현상인 죽음 자체만 놓고 본다면 큰 두려움은 없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다. 하나는 소극적인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것이다.
소극적으로, 나는 이 세상에서 더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대개 나와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일단 1953년 1월생이니,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 그동안 이 세상에서 많은 걸 경험했다. 60년 이상 매일 세끼씩 먹었으니, 내 몸을 통과한 먹을거리들의 양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헤어졌다. 나름으로 책도 많이 읽고, 또 쓰기도 했다. 배우고, 가르치고, 설교했다. 즐거운 일도 많았고, 마음 아픈 일도 겪었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일도 많았다. 그 모든 게 지나갔다. 지금도 지나고 있으며, 앞으로 당분간 그런 일들이 지나가게 될 것이다. 요즘 전도서의 가르침이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전 1:1-8).
지금 삶이 허무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는 지금도 재미있는 일들이 나에게는 많다. 다만 피조물로서의 실존을 절실하게 느낀다는 뜻이다. 그 무엇으로도 참된 안식이 불가능한 그런 실존 말이다. 그걸 뚫어볼 때만 ‘살아있음’의 기쁨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되지 않겠는가. 내 주변의 어떤 분들은 가끔 나에게 ‘목사님, 오래 사셔야 합니다.’ 하고 덕담을 한다. 오래 살지 아닐지 전혀 예측할 수 없지만, 평균 수명을 채우지 못한다고 해서 아쉬울 게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Mori,
생의 사생아인지, 생의 쌍둥이인지.
사실, 저가 쌍둥이 이긴 하지만,
목사님보다 젊은 나도 전염되었나 봅니다.
Venitas venitatum omnis venitas.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Memento mori, Amor fati.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운명을 사랑하라.
그저 오늘을 열씨미 살아가는 수밖에.
Kyrie Elei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