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앞 고속도로
며칠 전에 산책을 나갔다. 보통은 북쪽 방향을 잡는데, 그때는 서쪽 방향을 잡았다. 산이라고 해봐야 야트막한 야산에 불과하다. 오랜 전에도 한번 간적이 있는데, 산길은 대개 무덤 쪽으로 나 있다. 정승을 지낸 분의 무덤을 비롯해서 제법 그럴듯한 무덤이 여럿 있었다. 가는 길에 그럴듯한 고가도 있다. 퇴락하긴 했지만 지금도 그런대로 역사와 운치가 있어 보인다.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씩 후손들이 모여 거기서 제사를 지낸다. 사당 담장에 붙어 있는 고목이 우람하다.
내가 서쪽 방향을 잡은 이유는 그쪽으로 영천 상주 간 고속도로 토목공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작업은 아니고, 지금은 나무 캐기 작업 중이다. 내가 이곳에 이사 온 2013 봄부터 그 작업이 시작됐는데, 지금 2년이 가까이 되는 데도 여전히 나무를 캐간다. 대다수는 소나무다. 원래 가문 있는 무덤 주변에는 좋은 소나무가 많다. 그쪽 산에 오르자 집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 보였다. 고속도로가 뚫릴 방향으로 산이 다 파헤쳐졌다. 나무를 캐가는 작업만으로도 산을 저렇게 훼손하는데, 본격적인 도로 작업을 시작하면 어떨지 상상이 간다.
앞으로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우리 마을이 자동차 소음으로 뒤덮일까? 그렇게 되면 나는 다시 이사를 가야하지 않겠는가. 이장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 마을을 지나는 고속도로가 산 너머에 있고, 거리가 멀어서 괜찮을 거라고 하는데, 나는 은근히 염려가 된다. 일단 설계상으로 볼 때 산과 산 사이에 놓이게 될 다리는 마을에서 올려다 보여 보기에 흉할 것이고, 아무리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속도로라고 한다면 나같이 소리에 예민한 사람은 힘들지 않겠는가. 일단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 가능하면 완공 시기가 늦춰지기를 바라고, 그 사이에 내 청각 능력이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