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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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에 대한 목마름.
스마트폰을 갈아탈까?
새 것에 대한 사디스트의 욕망이 창궐하는
시대에 발터 벤야민의 묵시록을 꺼내본다.
그는 가장 새롭다는 것 속에서 아무 것도 변화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최신의 것은 항상 동일한 채로 있다. 유행은 무언가 늘 새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지만, 동일한 것의 영원한 회귀를 축하하고 있을 뿐이다.
유행의 노예가 되는
것은 영원한 형벌이며 그에게 현대는 지옥의 시대이다.
1930년대 서구유럽은 지식인들의 암흑기였다. 서유럽에서는 파시스트들이
궐기하였고, 소련에서는 스탈린의숙청이 무자비하게 자행되었으며 전세계는 식민지의 지배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벤야민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이러저리
도망다니다가 결국 파시즘에 희생되었다.
벤야민의 글은 난해하다.
오래전 공부하면서 밤새워 엉성한 어학실력으로 그의 글을 번역하다가 쓰러질뻔 한 기억이
떠오른다.
“ 그림의 천사는 그가 응시하는 어떤 것으로 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는 것처럼 보인다. 천사의 눈은 크게 뜨고 있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날개는 펴져 있다. 역사의 천사도 바로 이렇게 보일 것이다. 얼굴은 과거를 향해 있다.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바로
우리앞 그 자리에서, 오직 하나의 파국만을 본다. 잔해 위에 잔해를 쌓이게 만들고 그 잔해들을 그의 발치에 내팽개치는 그런 파국을. 천사는
머물고 싶어 하고, 죽은 자들을 깨우고 싶어 하고 또 산산이 쪼개진 것을 모아 다시 하나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천국에서 폭풍이 불어와
그의 날개를 꼼짝하지 못하게 만든다. 폭풍이 너무 강해 날개를 접을 수조차 없다. 폭풍은 천사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를 향해 불가항력적으로
그를 떠밀고, 앞에있는 잔해들이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이 이 폭풍이다.” (발터 벤야민 - 역사철학 테제 중에서)
'독일의 소크라테스'라 불리는 발터 벤야민 연구는 갈수록 확산되는 것 같습니다.
그의 글은 마르크스주의, 유대신비주의, 파시즘과 자본주의비판, 예술작품 비평 등 다양한 모습이 있으며, 역사철학, 미학, 신학, 건축학, 번역 등 다밤면의 저서를 통해 벤야민 사유의 독특한 유물론과 신학의 이중구조가 새로움의 대상으로 부각되는가 봅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와 함께 유럽 68세대 학생운동의 스승으로 불리는 벤야민이 9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쓴 '독일비극의 기원'이라는 교수자격 논문은 그 대학에서 한 줄도 이해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고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연구동향을 살펴보니 벤야민의 기독교적 수용은 이제 시작단계인 것 같습니다.
정목사님의 '뭔가 지적인 근육이 단단해질 것 같은 느낌'이라는 글이 와닿네요. 좋은 하루되십시오.
벤야민의 글이 어렵기는 어렵군요.
그래도 저런 글을 한번 읽으면
뭔가 지적인 근육이 단단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