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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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에 대한 글 한편 더 추가합니다.


벤야민은 근대와 진보의 '상품'이라는 물신(物神)에 취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직시하게 한다.
그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보들레르 작품에 등장하는 '유럽의 수도'라 불린 파리 이야기를 통해 19세기를 재조명했던 것이다. 보들레르가 '악의 꽃'을 출판했던 시기는 1857년경 프랑스 제2제정기에 속한다. 당시 폭넓게 확산되어가던 정치개혁 열망에 부응하지 못해 2월혁명이 촉발했다. 시위대 군중은 콩코르트 광장에 집결했고, 군중에 맞서던 군대는 사격을 시도하여, 분노한 시위대는 거리마다 바리케이드 설치를 통해 새로운 공화정 정부를 선포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혁명정부는 경험부족과 내부분열로 인해 또다시 실업자와 빈민들이 들고 일어났지만, 철저히 탄압되었고, 그결과 74 %라는 지지를 받은 강력한 새대통령 리우보나파르트가 집권하게 되었다. 그 이후 잘알려진 바와 같이 공산주의가 왕이 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보나파르트는 황제로 등극했다. 절대권력을 쥔 그는 거침없이 파리를 근대화 사업으로 화려하게 만들어 놓았고, 파리의 야경은 한층 우아한 정취를 뽐내게 되었으며, 호화스런 대륜마차가 누비고, 어디선가 화려한 만찬회, 무도회가 연일 개최되어 시민들은 흥분하고 보나파르트는 더욱 추앙해갔다. 그리고 파리개조사업을 통해 수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져 실업자를 구제했으며 준비없이 참여한 전쟁에 패할때까지 그는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다.
보들레르는 이 시기에 파리의 매력에 빠져 살았던 시인이다.

벤야민에게 있어 우수한 예술이란 예술성과 현실참여성이 적절히 결합되어 있는 것인데, 보들레르의 작품이 이를 가장 잘 충족시키고 있다고 봤다.

보들레르의 현실인식이 드러난 작품 <아벨과 카인>을 보자.
" 아벨의 패거리여, 먹고 마시고 자거라.
신(神)은 흐뭇해 네게 미소 짓는다.
카인의 패거리여, 수렁속에서 기어가다 비참하게 죽어라.
아벨의 패거리여, 네가 바치는 제물(祭物)이 천사장의 코를 만족시킨다!
카인의 패거리여, 네가 받는 형벌이 언제 끝날 것인가?

아벨의 패거리여, 네가 뿌리는 씨앗과 내 가축의 번성하는 것을 보라.
카인의 패거리여, 네 창자가 늙은 개처럼 굶주려 울부짓는다.
아벨의 패거리여, 네가 거느린 가정의 품에 안겨 배를 따뜻하게 하라.
카인의 패거리여, 네 토굴에서 추위로 떨고 있는, 가련한 재칼이여!
아벨의 패거리여, 사랑하고 번창하라! 네 돈도 새끼를 치는구나.
--- (중략)
아벨의 패거리여, 너의 수치여,
네 칼이 사냥 창에 패하고 말았구나!
카인의 패거리여, 하늘로 올라가라.
올라가 땅에 신을 내팽겨쳐라!


카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시궁창을 벗어날 수 없고, 아벨은 평생을 게으름 피워도 신의 사랑을 받는다. 보들레르의 시는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벤야민은 보들레르를 통해 산업화와 진보이데올로기가 밀려들어 인간성을 파괴했던 역사적 현장, 상품이 물신(物神)의 지위에 까지 올라 인간사회를 지배했던 현장, 노동이 도박처럼 가치를 잃고, 글을 팔아야 사는 작가들이 스스로 매춘부로 느껴야 했던 시대를 구현해 냈다.

유행의 속성을 통해 거짓 진보의 역사와 상품의 최후를 간파한 보들레르와 벤야민은 화려함으로 군중을 유혹하는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힘없는 자들의 불행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근대의 절망적인 세계인식에 빠져 우울한 시건에서 갑자기 벤야민은 유대주의의 메시아니즘을 꺼내 파국의 절망을 구원의 희망으로 역전한다.
그는 더 나빠질 수 없는, 회복 불가능한 세계를 향해 내려쳐질 '하나님의 폭력'(폭력비판을 위하여)을 기다린다. 벤야민에게 있어 기억해야 할 것은 깨어남의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의 깨어남' 말이다.

오늘 우리의 삶도 처절했던 보들레르의 19세기, 벤자민의 20세기와 무엇이 다른가?
판타스마고리아(환각)에서 깨어나라!


* 길어서 죄송합니다. 이글은  윤자영씨의 '발터벤자민 보들레르 연구분석'과 벤자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참고하여 썼습니다.


profile

정용섭

2015.01.17 23:06:02
*.94.91.64

오늘날에도 비수같은 언어로

우리의 잠든 영혼을 깨우는 선지자들이 많군요.

푸른별

2015.01.18 08:39:08
*.224.246.3

성서연구 사이트에 벤자민 글을 올리는 것에 대해 조금 망설였는데, 정목사님이 영혼을 깨우는 선지자라 말씀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점점 더 독단으로 치닫는 오늘날 기독교에 있어 다비안은  예수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맑은 샘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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