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똥을 눈다.

 

사람은 똥을 눈다. 먹는 한 배설하지 않을 수 없다. 새도 그렇고, 고양이도 그렇고, 메뚜기도 그렇고, 지렁이도 그렇다. 먹고 배설하는 두 행위는 절대적으로 연동되어 있다. 사람들은 주로 먹는 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지만 배설하는 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요즘에는 화장실도 식당 못지않게 꾸며놓긴 했다. 밥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청결한 화장실을 만들어주겠다는 선전문구도 본 것 같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똥은 더럽다는 생각은, 그렇게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뭔가 멀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지 못한다.

 

요즘 웬만한 집에는 변기에 비데가 달려 있다. 실제로 위생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우리 집에는 1층에만 비데가 있어서 주로 2층에 기거하는 나는 직접 화장지로 처리한다. 말이 나온 김에, 그게 오히려 항문 괄약근 건강에는 더 좋을 것 같다. 어쨌든지 세련된 화장실 문화로 인해서 똥과 그 행위가 우리의 삶에서 점점 멀리 분리되어 간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옛날 재래식 변소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느끼고 속으로 웃으실 것이다.) 좌변기에 앉아 고상하게 책을 읽으면서 똥을 누고, 비데를 틀고 난 뒤에 잠시 기다렸다가 그냥 단추만 하나 누르면 꾸르륵 소리와 함께 모든 것들이 물의 힘에 빨려서 내려간다. 똥은 그렇게 무시당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가 눈 똥을 거들떠보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매일 본다. 거기에 내가 있으니까.

 

사람에 따라서 똥을 누는 시간이 다르다. 어떤 분들은 눈을 뜨자 곧 처리하기도 하지만, 나는 아침을 먹고 조금 시간이 지나야 배변 느낌이 온다. 거의 매일이 똑같다. 음식이 들어온 위가 자극되어 그 자극이 다시 작은창자와 큰창자까지 전달된다. 입에서부터 시작해서 식도와 위와 창자와 항문의 괄약근까지에 이르는 메커니즘이 자연스럽게 작동되어야만 편하게 똥을 눌 수 있다. 정말 정교한 생리현상이다.

 

먹는 행위가 거룩하다면 배설하는 행위도 거룩하다. 오죽 했으면 절간에서는 똥 누는 곳을 해우소(解憂所, 근심을 푸는 장소)라 불렀겠는가. 얼마 있으면 나에게도 스스로 똥을 누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말짱한 정신으로 매일 똥을 눈다. 황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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