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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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은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는 뜻으로 아무도 모르게 홀로 있으면서 자신의 매무새를 가다듬고 스스로의 영점조정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의 선비들은 신독을 아주 중요시한 것 같다.
현대인들은 "신독" 에는 젬병이다. 시대를 통틀어 유난히도 외로움을 많이 타는 현대인들은 항상 나 좀 바라봐 달라는 애원의 눈빛으로 가득하다. 페이스북 현상도 그런 면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헨리 나우웬은 현대인들이 solitude(홀로 있음)를 isolation(외로움)으로 착각한다고 이야기 한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목이 터져라 부르짖어도 그 뒤안은 공허함이나 허무함이 엄습할 수 있는 것은 "홀로 있음" 이 안되기 때문이다.
예수가 가졌던 내적 힘의 원천도 바로 그 "홀로 있음"에서 왔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홀로 있을 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 있지를 못한다. 뭐라도 맛있는 것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고, 재밌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이라도 들어야 하고, 심지어는 야동을 보기도 한다. (꼭 내 경험 같지만 ㅋ) 어떻게든 그 고독을 그 무언가로 채우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홀로 있음의 고독에 처하는 법을 배우고, 오히려 그 고독을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게 바로 기도다.
나는 한 번씩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있는 시간을 자주 가지게 되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일어난다기 보다도 그 새벽 미명의 초대에 응했다고 말하면 적절할까? 하루의 어느 때보다도 홀로 있기에 좋은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인 듯 했다.
그러면서 마음 가는대로 책을 보기도 하고, 조용한 음악을 듣기도 하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대로 기도를 했다. 실타래처럼 엉켜서 풀지 못했던 관계를 위한 기도, 어떤 필요 가운데 있는 사람을 위한 기도 등등... 그러면서 기도가 참 자연스러워지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조금씩 그 맛을 알아가게 되면서, 나의 일상이 홀로 있음의 세례를 받게 되었다.
마치 아무 맛도 없는 것 같은 꽁보리 밥알을 꼭꼭 씹으면 나중에 단 맛이 은은하게 나듯이 미칠것만 같이 느껴지던 일상에서 조금씩 맛이 나기 시작했다.
난 개원 후 절반의 인생이 지옥의 삶이었다. 사실 적성에 맞지도 않았을 뿐더러, 호구지책으로 해오던 이 일 자체가 나에게는 그냥 모래 씹는 느낌이었다. 환자를 대하던 가식적인 친절도 - 밥 먹고 살아야 하기에- 가증스러웠다. 항상 오지도 않은 주말을 기다리고, 주말이 끝나면 마치 사형장 끌려가는 기분으로 출근을 했었다. 요즘 잘 하는 말로 "참 의미 없다" 였다.
그렇지만 요즘은 점점 일상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그러면서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헨리 나우웬은 이 것을 Being fully present to this very moment 라고 이야기 한다)
사실 이 순간이야말로 영원으로 통하는 문이다.
결국 기독교는 예수의 존재론과 실존을 우리가 우리의 존재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 딴게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진다. (물론 우리가 예수와 똑같은 삶을 살 수 있다거나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독교가 규범론으로 떨어질 때, 그냥 끝이 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뭐 하지 마라, 뭐 하지 마라 아무리 해봐도 우리 속의 외로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결국은 또 하게 된다.
진정한 수도자들은 홀로 있음 뿐만 아니라 저잣거리의 삶을 중요시 한다. 예수도 마찬가지였다. 예수의 삶은 "홀로 있음"과 "더불어 삶" 의 연속이었다. 홀로 있음이 더불어의 삶을 강화하고, 또한 더불어의 삶이 홀로 있음을 강화하는 이 것이야말로 바로 삶의 본질이다.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순환적 구조다.
현대는 더불어 삶의 과잉의 시대다. 그런 과잉 속에서도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는 것은 홀로 있음의 과도한 결핍을 의미한다.
저도 지금 웍샵에 왔는데 점심먹고 근처 낮은 산에 등산로와 바닷가를 홀로 3시간 정도 거닐었습니다. 정상즘에서 멍하니 바다를 보다 근처 벤치에서 30분정도 자고 내려가 바닷가와 촌락에 집들을 구경하다 숙소로 이제왔습니다.
세상말 실없어 토씨마저 죽였다는 오인태 시인의 마음으로 시끄러운 사람들 틈새를 벗어나 홀로 조용히 거닐었습니다.
근데 저는 홀로가 아직도 좀 어색합니다.
아직도 내 안에 알량한 자존심과
변덕스러운 타인들의 인정을 바라는 마음이
포기가 안되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홀로 있을 때 하시는 일들이 저와
비슷하시네요... ㅎㅎ
愼獨을 身獨으로 잘못 알고 있었어요, 그 것도 까마득히... 항상 쓰면서도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그 간에 얼마나 무식함을 퍼날랐을지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