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6일
불립문자
바울이 고후 12장에서 말하는 셋째 하늘과 낙원은 같다. 유대인들은 셋째 하늘에 낙원이 있다고 생각했다. 바울은 자신이 그곳을 갔다 왔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런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요즘도 천국에 갔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와 같다. 바울의 말은 옳고 요즘 천국 운운하는 사람들의 말은 틀린 걸까? 아니면 둘 다 옳거나, 둘 다 틀린 걸까? 이런 논란은 여기서 다루지 말자. 바울의 말만 따라가자.
바울은 셋째 하늘과 낙원을 말하면서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밖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일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독서삼매와 비슷한 현상이다. 영화에 몰입할 때나 음악에 몰입할 때도, 또는 예배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 자체가 모두 이런 경험과 맞닿아 있다. 우리의 몸은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세계 안에 들어가 있는 건지 밖에 나와 있는 건지도 명백하게 아는 게 아니다. 모든 게 시간의 비밀에 속한다.
바울은 거기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다. 공동번역은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말’이라고 했다. 천사들의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방언을 가리키는 걸까? 여기서 말을 실제의 우리 언어라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존재하는 것 자체가 말이다. 그것은 무엇을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지시하고 있으니까 세상 자체가 언어인 셈이다. 그런데 궁극적인 것은 말로 표현이 안 된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했다. 그걸 설교 시간에 한 마디 했다.
우리는 지금 일상에서 불립문자를 경험한다. ‘이 뭐꼬?’ 더 이상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궁극을 일상에서 대면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 나도 더 이상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굳이 말을 해서 알아듣는 사람은 아직 불립문자의 신비를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