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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9일
십자가의 신비
지난 설교 마지막 단락에서 ‘약한 것들을 자랑하겠다.’는 바울의 진술이 십자가의 신비와 닿아 있다고 말했다. 십자가는 완전히 망하는 길인데, 그게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은혜가 충분하다.’는 고백의 근거가 된다는 건가? 오늘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시대정신은 이것과 완전히 대립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킨다. 그의 십자가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는 심판을 당할 자가 아니라 심판을 행할 자라는 말이다. 그런 그가 심판을 당하여 십자가에서 무기력하게 죽었다. 가장 고귀한 존재가 가장 비천하게 죽었다. 따라서 십자가의 죽음은 더 이상 부끄러운 사건이 아니다. 존재론적으로 그렇다. 유대인들은 그걸 거리끼는 것으로 여겼고, 로마인들은 미련한 것으로 여겼지만 말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 아니고 무엇인가.
그뿐만이 아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의 자리에 그가 함께 한다는 의미다. 단순히 의미에 불과한 게 아니라 실체가 그렇다. 우리 삶의 고통이나 죽음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함께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버텨낼 수 있다. 이로 인해서 더 이상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 또는 십자가의 능력 아니고 무엇인가. 나도 이미 부활이 은폐된 예수의 십자가에 의지해서 죽음을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