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0일
자기 부정
지금 나는 계속해서 지난 주간의 설교를 부분적으로 보충하는 중이다. 어제의 주제는 십자가의 신비였다. 오늘은 그것과 연관된 ‘자기 부정’을 보충해야겠다. 교회 이력이 좀 있는 분들은 많이 들었던 이야기라서 별로 기대가 없을 것이다. 설교 시간에 이미 자기 부정을 자기와 관련된 것에 대한 관심을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게 과연 가능한지를 물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지도 물어야 한다.
우선 자기 부정과 자기 거부는 구별된다. 자기를 거부하는 건 기독교 신앙과 어울리지 않는다. 자기 부정은 자기의 이기심과 업적을 부정하는 것이지 자기라는 정체성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거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기 부정이 아니라 자기 학대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또는 하나님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기를 거부할 수 없다. 부족한 모습 그대로의 자기를 인정하게 된다.
세상은 자기 확대를 멋진 삶이라고 가르친다. 한 마디로 고액 연봉을 추구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대정신을 기독교인들이 맞서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게 쉽지 않다. 세속의 삶을 완전히 포기하고 기도원으로 들어가면 모를까, 세상살이를 영위하려면 어쩔 수 없이 세상의 논리를 따라야 할 때가 있다. 이게 우리의 딜레마다. 자기 확대로는 영적인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지만 여전히 그런 구조에서 살아야 하니 말이다.
다른 길은 없다. 억지로 자기를 부정할 수는 없다. 자기가 빠져들 수 있는 어떤 신앙의 세계를 깨닫는 게 최선이다. 보물이 묻힌 밭을 발견한 어떤 사람이 자기 전 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절대적으로 좋은 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 확대에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줄어드는 속도와 경지는 개인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여기서의 관건은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우리가 존재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예, 쌀알 님,
반갑습니다.
제가 원고를 컴 화면에서 읽기 좋게
좁혀서 편집합니다.
그게 모바일에서는 너무 좁게 나오나 보군요.
나중에 한번 확인해보겠습니다.
부활생명, 여러 신앙의 문제에 관해 생긴 의문이
아직 풀리지 않아서 힘드시군요.
그런 의문이 드는 건,
그리고 대충 지나치지 않고
사역을 중단할 정도로 부딪치는 건
쌀알 님의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에요.
대개는 몰라도 아는 척하거나
어쩔 수 없다고 지나갑니다.
기독교 교리의 중심으로 들어가려면
철학과 인문학 공부가 필수입니다.
그런 뒷받침이 없어서 대다수 신학생들이
신학행위에서 실패합니다.
앞으로 또 어떤 길이든지 열리겠지요.
주님의 평화가...
정용섭 교수님 오랫만에 와서 글을 올립니다. 마침 자기부정이라는 란이 있어서 본문의 내용과는 별 관련이 없지만 같은 주제로 답답해서 글을 올리려구요. 제가 봤을때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기 자신안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다시말해서 자기 자신의 삶과 신앙의 에너지를 하나님으로 부터 구하고 의지하려는 신앙의 진정성과 순수성은 있습니다만은 자신의 실존과 자신의 위치를 넘어서는 그러니까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이나 확신을 넘어서는 그런 통찰력이나 안목을 가진 사람들은 찾아보기가 매우 힘듭니다. 사실 사람마다 다 각자의 입장이 있고 또 처해있는 상황과 처지가 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일이라도 또 같은 신앙인이라도 경우에 따라서 또 사안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수도 있겠구요. 더구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같은 것에 대해서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건데 왜 많은 기독교 인들은 그런 것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안에 갇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자신의 주관안에 너무 함몰되어 있다는 생각을 받습니다. 그래서인지 독실한 신앙을 가지신 분들중에 상당수가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는 분들은 적지않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기울이거나 경청하는 분들은 본적이 아마도 없었던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 주변에 적지않은 독실하신 분들도 그렇고요... 그 분들도 자신들의 주관과 자신들의 실존안에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것을 넘어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와 안목이 넓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도 이현령 비현령처럼 써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구요... 제가 보기에는 많은 신앙인들이 또 다른 부분에 있어서 자기 부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목사님 생각은 어떤가요?
매일 올려주시는 묵상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바일로 볼때 사진을 첨부하지 않은 글은, 글씨들이 왼쪽 1/3 지점에 몰려있네요.
읽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지만...ㅎㅎ
참고로 제 폰은 아이폰6 인데요, 이 폰만 그런건지 다른 분들도 그런건지 모르겠네요.
어제 묵상이었던 해바라기 사진이 있는 글은 괜찮아요.
저는 올해 신대원을 졸업하고 사역도 해왔었는데 예수님의 부활생명에 관한 의심과 신앙에 관한 여러가지 의문들로 인해, 그리고 제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며 사역을 그만두고 있는 상태입니다.ㅠㅠ
이런 고민까지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 길어졌습니다.
목사님 말씀 들으며 또 다른 공부도 하면서 길을 찾아가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어찌됐든... 설교와 묵상 감사히 읽고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