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3일
서울역에서 원당까지
어제 서울에 다녀왔다. 당일치기 나들이라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대구샘터교회에서 예배와 식사가 끝난 후 즉시 오후 4시에 시작하는 서울샘터교회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서 오후1시22분 동대구 출발 서울 행 기차에 몸을 실어야 한다. 어제도 그렇게 다녀왔다. 느낌이 남달라 돌아올 때의 풍경만 잠시 스케치하겠다.
저녁 8시30분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케이티엑스를 탔다. 자리는 4호차 7A로, 1인석이다. 보통 1-5호까지가 특실이다. 일반실에 비해서 요금이 더 나가지만 편리한 점이 많다. 자리를 잡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늘 그렇듯이 책읽기다. 서울샘터교회 예배 후에 있었던 신학공부의 주제가 ‘성령’이어서 올라갈 때 읽으려고 준비한 책인 몰트만의 <생명의 영>을 다시 꺼내들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저자와 사유의 숲을 더불어 산보한다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낭만적인지를 상상해보라. 더구나 몰트만처럼 세계 최고의 신학자가 옆에서 뭔가를 소곤거리고 있으니, 그 느낌이 어떨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동대구까지 1시간 50분 동안 중간에 잠시 깜빡 조는 순간을 빼고는 계속 그 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 집 서재에서보다 기차 안에서의 책읽기 집중력이 더 높다. 집에서는 주로 다른 작업을 하다가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지만 기차에서는 오로지 책만 읽기 때문이다. 내가 젊었을 때는 기차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을 자주 봤는데, 요즘은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다.
어제는 유독 어린아이들이 객실에 많았다. 바로 내 자리 근처에 몰려 있었다. 서로 친척간인 거 같았다. 나이 든 남자가 있었고, 그 자녀들로 보이는 이들과 그들의 자녀, 그러니까 나이 든 남자의 손자나 손녀로 보이는 아이들이 여럿이었다. 아이들이 객실에서 그냥 앉아 소곤거리리만 하겠는가. 남자 승무원이 지나가다가 아이들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했는데도, 그 순간뿐이지 그냥 자기들의 놀이에 취해 있었다. 그게 아이들이니 어쩌겠는가. 그리고 그게 귀엽기도 했다. 뒤에서 어머니 되는 분의 교양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자기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조용히 하라고, 빨리 이리 와서 앉으라고 말했지만, 그게 건성이라는 건 누가 들어도 알만했다. 객실에서 소란 피우는 아이들을 자제시킬 수 있는 어머니로서의 교양이 자기에게도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뿐이다. 그것만 해도 어딘가. 그들 틈에 끼어 나는 책을 보고 있었다.
대전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가는가?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전개되는가? 지금 실연의 아픔을 못 견뎌하는 건 아닌가. 사이가 벌어졌던 부모, 또는 아내와 화해하러 가는 건 아닌가? 서울 큰 병원에서 난치병 확진을 받고 맥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가? 내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운명의 길을 가는 이들이 어제 바로 그 시간에 내가 타고 있던 객실에 오르고 내렸다. 거기서 장난치던 아이들은 바로 옆에서 몰트만의 <생명의 영>을 읽던 어떤 늙은 남자, 자신의 할아버지쯤 되는 어떤 사람이 거기 앉아있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눈치를 챘을까? 아이들의 무의식에 그런 흔적의 조각들이 남아 있을까? 하나님의 기억에는 남아 있을까?
이런 식으로 서울역에서 원당까지 내 의식에 나타났던 것을 쓰기 시작하면 소설 한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할 말은 끝이 없다. 동대구역에 밤 10시 20분에 도착했다. 그 기차를 그대로 타고 있으면 신경주, 울산을 거쳐 부산까지 간다. 우리의 인생도 중간에서 다 내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왜 그래야만 할까, 부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는 없을까. 동대구역 대합실에서 주차장까지 십분 이상 걸어야 한다. 찬송, 성경, 2015년 다이어리 수첩, 설교문 파일, 몰트만 책 등이 들어 있는 가방이 묵직했다. 공교롭게 어제따라 다른 물건 꾸러미가 또 있었다. 비가 오니 우산을 펼쳐야했다. 바람도 만만치 않았다. 10분 동안 걸어가면서도 무지하게 많은 것들을 보았고, 경험했다. 1분30초 정도 기다리는 신호등 앞의 광경이 어떤 건지, 거기에 얽힌 사연들을 추적하려면 우주 끝까지 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마치자.
어제 서울역에서 원당까지의 내 동선을 예술가적 안목이 있는 촬영기사가 찍었다면 한편의 영화가, 대중 영화는 아니지만 나름 작품성 높은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별난 구석이 없는, 그렇고 그런 주일 저녁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거기에 연루된 것들은 인류, 문명, 삶과 죽음을 다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반드시 나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우주의 깊이에서 유기적 관계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모두 주인공이다. 그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 대통령도 엑스트라다. 이게 세상의 신비다. 차이가 있다면 그걸 의식하는 사람이 있고 의식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뿐이다. 전자는 생명 자체에 밀착해 있는 사람이고, 후자는 느슨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명 자체에 밀착해서 살아가는 삶이 바로 하나님 경험 아니겠는가.
오늘은 묵상글을 읽으면서
한 편의 독립영화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지막에 영화에 대한 언급을 하셨네요 ^^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할 때
저도 가끔 목사님과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거장마다 타고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와서 또 어디로 이렇게 바쁘게 가는 걸까?
그들이 쫓고 있는 일들이 정말 중요한 일일까? 아니면 허상을 쫓는 것일까?
내 삶이 소중한 것처럼 이들의 삶 또한 어마어마한 무게를 가지고 있겠지?
그러나 자신이 어디서 왔고, 또 궁극적으로 어디로 가는지 의문을 가질까?
이들은 정말 바른 목적지에 내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잠깐 머물다가 내려야 하는 것이 인생인데 난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
뭐...이런 생각들이요...
잠깐 머무는 그 시간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영상과 카톡, 게임과 음악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초점이 없는 눈빛으로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고,
어떤 사람은 잠을 자고, 또 어떤 사람은 책을 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