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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1일
다윗의 정통성 확보 프로젝트
삼하 5:1절 이하에 따르면 다윗은 명실상부 통일왕국의 왕이 되었다. 이스라엘 지파가 헤브론에 와서 다윗을 자신들의 왕으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거론된 이스라엘 지파는 사울 왕과 이스보셋을 따르던 지파들이다. 자신들의 왕이 죽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혹은 기꺼이 다윗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미 이때부터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지정학적으로, 또는 정서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차이점에 많았다. 이들 이스라엘 지파는 훗날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을 반대하여 반역을 일으킨다. 이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은 솔로몬에 의해서 추방당했던, 또는 망명을 떠났던 장군 여로보암이다.
다윗이 나라를 통일시켰다고는 하지만 정통성이 여전히 확고하지 못했다. 사울을 따르던 원로대신들도 여전히 살아 있었고, 백성들의 마음도 하나로 뭉치지 못했다. 설교에서 짚은 것처럼 다윗은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범국가적 사업을 펼친다. 여부스 족이 살고 있던 예루살렘 정복, 법궤 이전, 성전 건축이다. 이 세 가지는 다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계기이다. 각각에 대해서 삼하 5장, 6장, 7장이 차례대로 전한다. 다윗은 단순히 믿음이 좋은 왕이었다기보다는 정치와 전쟁 등에서도 아주 탁월한 능력을 보인 사람이다. 믿음만으로는 역사적 업적을 남길 수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