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4일
<바람이 분다 2>
주인공 지로는 어릴 때부터 비행기를 타고 나는 꿈을 자주 꾸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실제 인물을 극화한 것이라고 한다. 지로는 눈이 나빠서 비행기 조종사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비행기 설계에 모든 삶의 에너지를 쏟는다. 그는 꿈을 이룬다. 예쁘고 튼튼한 작은 비행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게 전쟁에 사용되고 말았다. 마지막 대목에서 자기가 어릴 때부터 몽상의 세계에서 만나곤 했던 원로급 이탈리아 비행기 설계사를 다시 만난다. 그 설계사가 지로의 비행기를 아름답다고 칭찬하자 지로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 비행기도 돌아오지 못했다고. 지로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꿈과 열정과 수고가 전쟁으로 인해서 무참히 밟힌 것이다.
지로는 비행의 미학을 아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공중을 더 빠르고 아름답고 경쾌하게 날 수 있는지, 단순히 실용적인 차원이 아니라 미학적인 차원에서 그 길을 계속 찾았다. 사실 아름다운 게 실용적이고, 실용적인 게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
내 서재에서 바라보는 원당은 아주 넓은 종합운동장 같다. 남쪽만 터진 채 빙 둘러 산이 막혀 있고 그 가운데는 광활한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 나는 자주 이 공간을 나는 새들을 본다. 새들의 나는 모습이 바다의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과 비슷하다. 한쪽은 공기로 가득한 공간이고 다른 쪽은 물로 가득한 공간이다. 그들은 각각 그곳에서 자유롭게 난다. 가끔은 날갯짓 없이 순전히 양력으로만 활공하는 새도 본다. 황홀한 비상이다. 직선으로 나는 새도 있고, 오르내리면서 나는 새도 있다. 제각각 아름답게 난다.
아주 옛날 내가 집사람과 데이트 할 때 가장 많이 이야기 한 게 요나단 리빙스턴 시걸의 <갈매기의 꿈>이다. 폼 잡듯이 말했을 거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거나, 일정한 속도를 넘어서면 날개가 황금빛을 낸다고 말이다. 그러니 높이 날아야 한다고. 그때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잘 듣는 것 같더니만, 결혼 후에 하는 말이 ‘지루해서 혼났다.’고 한다. 나는 당시 여자를 재미있게 해주는 걸 전혀 모르고, 또 잘 할 줄도 몰랐고 그냥 책 이야기만 했다. 그런데도 어쨌든지 결혼까지 했다. 그 뒤 두 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잘 놀아주는 아빠는 못 되었고, 책 이야기는 많이 하는 아빠로 남았다.
사족: 세 여자들에게 아직 변화가 없다. 내가 재미있는 사람으로 변하는 게 빠를 거 같다. 세 여자는 아래층에 살고 나만 이층에 산다. 어쨌든지 오늘도 바람은 불고, 새는 날고, 나무는 흔들린다. 달은 아마 늦게 뜰 것이다.
마지막 사족 때문에 갑자기 나는 어떤 아빠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을 해보다가... 아이들에게나 아내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생각하는 모습과는 다를 것 같아서요...ㅎㅎ
바람이 분다는 그 단어가 주는 메타포 때문이라도
목사님께서 꼭 보시지 않을까 추측을 했었습니다.
저도 조만간 다시 봐야겠습니다. 바람이 또 다른 느낌으로 불 것 같아서요.
제가 썼던 상투적인 표현이나 평범한 일상이 신비롭게 변화되는 것...
신앙의 또 다른 모습이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