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5일
<바람이 분다 3>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이지만 <바람이 분다> 역시 그림이 다이내믹하다. 앞 부분의 관동대지진에 대한 묘사가 압권이다. 주인공 지로가 군중을 헤치고 나오는 장면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꽉 끼어 있는 그 상황인데도 그 움직임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유려한지 화면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듯했다. 이런 장면이 수없이 많다. 그림의 진수를 느끼게 한 장면들을 이곳으로 끌어올 수 있는 컴퓨터 조작기술이 내게 없는 게 아쉽다.
영상미의 능력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세계를 보는 눈에 달려 있다. 세상, 인간,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는 눈이 중요하다. 그게 없으면 세상은 단조롭다. 대개의 사람들은 세상을 단조롭게 보고 산다. 단조로움으로 삶을 버텨낼 수 없으니 다른 것을 찾게 된다. 문제는 단조로운 시각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른다는 것이다. 동굴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은 동굴 밖을 상상할 수 없는 거와 같다. 매사를 동굴이라는 범주로만 판단하고 경험하고,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 영화의 키워드인 바람을 보자. 우리는 늘 바람과 함께 산다. 숨도 기본적으로는 바람이다. 무더운 날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은 시원하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은 더 좋다. 태풍도 자주 경험한다. 새들과 나무는 거의 바람과 일치해 있다. 우리 삶에 밀착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바람을 풍요롭게 경험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바람이 그저 스쳐지나갈 뿐이다.
바람은 훨씬 근원적인 어떤 사태다. 사람이 제어할 수 없는 존재론적인 능력이다. 그 시각이 열릴 때 우리는 바람과의 새로운 관계로 들어간다. 그 사람의 영적 수준에 따라서 그 관계도 여러 층으로 나타난다. 한 가지만 보자. 바람은 인간이 사물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라 할 수 있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은 자기 나름으로 뭔가를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무를 대신해서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은 아닐까? 그걸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무감각한 사람이 있다. 오죽 했으면 성경기자들이 그 바람을 영의 현상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했겠는가.
"영상미의 능력은 세계를 보는눈에 달려있다." 이말씀을 들으니 얼마전,
번개특강에서 "글쓰기는 영적통찰력이 필요하다." 그말씀이 떠오릅니다.
사건 그자체만이 아니라, 세상,인간,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는눈이 삶을
단조롭게 살아가는것에서 벗어날수 있게함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제어할수없는 존재론적 능력을 볼수있는 그시각이 열릴때
세계와의 새로운 관계에 들어간다는 말씀이 깊이 와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