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7일
<바람이 분다 5>
주인공 지로가 나호코라는 여자를 만나는 계기도 바람이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모자가 바람에 날려 옆 2등 객차로 갔는데, 그걸 나호코가 잡아 준 것이다. 그 뒤로도 바람에 의한 에피소드가 연결되어서 결국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지로에게 나호코는 바람이 안겨준 여인인 셈이다.
남녀관계도 그렇고, 모든 인간관계에는 에피소드가 개입된다. 지금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를 조금만 살펴보라. 우연한 일이다. 대구성서아카데미 회원들과의 관계도 그렇다. 이 글을 읽은 분들이 정용섭 목사를 알게 된 경우도 그렇고, 내가 대구성서아카데미를 시작하게 된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이런 일에 신경을 쓸 만한 여유가 없는 교회의 담임 목사였다면 대구성서아카데미는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대구성서아카데미를 어느 정도 유명하게 만든 설교비평도 역시 몇 가지 에피소드의 결과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세상과 역사는 다 에피소드의 유기적 연관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바람은 에피소드를 일으키는 원동력이다. 바람의 활동과 에피소드가 비슷하다. 바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우리의 예측을 벗어나는 운동이자 힘이다. 태평양 무인도에 사는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에피소드로 점철되는 우리의 운명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유를 해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뭔가에 홀렸나?’ 하는 느낌이 든다. 이런 경험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왕이면 성령에 홀리는 게 좋지 않겠는가.
이 묵상글 덕분에 오늘 미야자키감독의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았습니다.
<이웃집토토로>, <바람이 분다>
장면장면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빨려들어가며 보았어요.
그리고 두 편 모두 울면서..
바람이 분다를 다 본 지금
제 가슴 안에도 바람이 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