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 분단 70
얼마 전에 영화 <암살>을 가족과 함께 봤다.
딸이 나오면서 ‘아빠, 어땠어요?’ 하고 묻는다.
‘음, 그냥 그랬다. 근데 감독이 혹시 <도적들>을 만든 그 사람 아니니?’
딸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한다.
내가 이유를 대충 설명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하더라.
볼거리를 많이 제공하긴 하지만 뭔가 어색하더라.
도적들에서는 미션 임파서블 흉내를 많이 냈고,
암살에서는 내가 영화를 많이 안 봐서 잘 모르겠지만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만한 장면들이 반복되는 거 같았어.’
딸과 아내가 같이 가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러나 겉으로는 기꺼이 영화관에 갔지만
영화가 지루했고,
어느 때는 졸리기까지 했다.
영화의 메시지는 마음에 들었다.
친일과 반일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가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다.
왜곡의 역사에서 백미는 1948년 8월 국회에서 제정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실패다.
그 여파가 지금까지 계속된다.
친일이 친미로 상대만 바뀌었을 뿐이지
식민사대주의 정신은 여전하다.
오늘은 광복 70주년이다.
분단 70주년이기도 하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인류 역사에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광복의 기쁨이 분단의 슬픔이 되다니.
해방둥이들이 70살이 되었다.
당시 어느 누가 분단 70년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정부를 비롯해서 유관 기관과 여러 단체들이
광복 70주년 기념행사와 축하행사 하느라 바쁜 하루였다.
뭘 축하하는가?
노래가 나오는가?
통곡해도 시원치 않을 이 민족 분단의 상황에서 말이다.
‘남북문제만 잘 해결하면 다른 건 깽판 쳐도 된다.’고 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심정을 나는 십분 이해한다.
척추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모든 비극의 원천이듯이
민족분단의 장애를 70년 동안 앓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것이 비극의 원천이다.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천문학적 국방비는 더 말해 무엇하랴.
남북통일, 가능한가?
우리 후손들은 오늘의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오늘 기독교는 남북문제를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아니 거기에 관심이라도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말을 하기도 지쳤다.
그렇다고 내가 유난스레 통일 운동가로 활동했다는 말은 아니고,
이런저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장하던 작은 목소리마저
내놓기가 귀찮아졌다는 말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광복 70년,
분단 70년,
가슴이 답답하고 시리다.
하룻동안 대한민국의 많은 행사들이 그저 행사로, 웃고 떠들며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눈속임으로 밖엔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현실을 직시하거나 역사속에 어떤 것들이 왜곡되었는지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 왜 반복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토론하거나 대화하지 않는 우리의 상황이 화가나기도 하고 밉기도합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 이런 이야기들이 지치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고 생각지
않으려는 태도들이 그렇습니다.
그저 경제대국으로 기적을 이루었다만 외치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는 기준도 경제력에만 두는 모든 이들에
사고가 싫어집니다.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이라 믿고 소망해야 하나 포기하거나 망각하고 싶어지는게 사실입니다.
구체적으로 역사에서 어떻게 이루어가시는지에 대한 공부가 대안이겠지요? 그 하나님에 대한 공부말입니다.
어렵습니다. 너무 광범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