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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6일
썩을 양식
오병이어 사건을 목격한 뒤에 예수에게 메시아적 희망을 품고 찾아온 유대 군중들에게 예수는 듣는 이들에게 민망한 말을 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7). 기분 나쁜 말로도 들릴 수 있다. 당신은 뭐 잘났다고 썩은 양식 운운하냐고, 당신은 밥 먹지 않고 이슬만 먹고 사냐고 말이다. 이건 오해다. 예수는 결코 관념적인 생각에 머문 적이 없다. 썩을 양식 운운은 인간 삶의 실체를 뚫어본 말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 문제는 썩을 양식이 우리의 삶 전체를 완전하게 통제한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서 많은 이들의 삶이 훼손된다. 이런 현상이 너무 심해서 삶의 훼손이 무엇인지에 대한 느낌과 판단이 없을 정도다. 마태복음 5장이 가리키는 팔복은 기독교인들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가난한 이들이나 부유한 이들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하는 게 이에 대한 증거다.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여 일정한 수준의 수입을 올리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모든 삶을 희생한다. 톨스토이의 동화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에 나오는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리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성취하기 바로 직전에 죽는다. 나는 예외를 한 번도 못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