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5일
모두 죽는다(8)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음 자체보다도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당하게 될 육체적인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폐암이나 췌장암은 고통이 극심하다고 한다. 본인들도 힘들고 가족도 힘들다. 이런 상황 앞에서는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게 된다.
해결 방법이 안락사다. 이게 합법화된 나라도 있다. 안락사는 몇 겹의 확인과정을 거쳐서 더 이상 생명을 부지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에게만 소극적으로 기회가 주어진다.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치면서 1년 더 살기보다는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주장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건 아니다. 안락사의 합법화로 인해서 벌어질 문제들도 물론 적지 않긴 하다. 생명을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접근하게 될 수도 있고, 본인이 실제로는 원하지 않지만 가족을 위해서 안락사를 택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윤리적인 논의가 더 필요하다.
안락사와는 다르지만 기계 장치에 의한 생명 연장시술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요즘 늘어나는 추세다. 일종의 유언처럼 자신이 식물인간의 상태에 떨어지면 그 어떤 생명 연장 시술도 하지 말라고 말해놓는 것이다. 여기서도 물론 의료적인 판단이 정확하게 서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회복 가능성을 어떻게 계량화 할 수 있겠는가.
참고로, 시신처리는 어떤 방식이 옳을까? 특히 기독교인들의 경우에 말이다. 매장, 화장, 의료실습 용 기증, 어떤 것이나 신학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너무 낯설겠지만 티베트 승려들의 장례풍습인 조장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요즘 시신 기증에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나는지 줄어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방법도 신중하게 고려해볼만하다. 몸의 장기가 어느 정도 쓸모 있는 나이에 죽으면 장기 이식도 가능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젊어 죽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조장 ; 아름답고 멋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