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6일
묵시적 대파국
어제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집에 와서 집사람과 작은 딸에게 설교가 잘 전달됐는지를 물었다. 전체적으로 이해는 됐지만 일단 ‘묵시적 대파국’이라는 단어에 걸려서 진도 나가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묵시’라는 단어가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말하면서도 설교를 따라오면 저절로 이해가 될 거라는 내 생각이 나이브했나보다. 사실 설교행위에서 전문용어나 개념적인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런데도 내가 종종 이런 신학적인 전문용어 사용을 감행하는 이유는 무조건 쉬운 말로 설교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신학적인 전문용어 자체가 힘이 있어서 문맥적으로 잘 사용하기만 하면 회중들의 영혼에 울림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지 ‘묵시적 대파국’이라는 용어를 여기서나마 보충 설명을 해야겠다.
묵시(默示)는 ‘비밀스럽게 알리다.’는 뜻이다. 이를 바탕에 놓고 세계를 해석하고 대응하려는 생각과 운동을 가리켜 ‘묵시사상’(apocalyptism)이라고 한다. 유대인들에게서 이런 묵시사상이 두드러졌다. 그 역사적 배경은 설교에서 언급되었다. 악의 승리와 선의 패배라는 역사적 현실 앞에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 외에는 이 세상의 변혁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언젠가 때가 되면 철저하게 악한 이 세상은 완전히 파멸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묵시사상은 다니엘, 에스겔과 이사야 등등의 몇 대목에 나온다. 복음서에도 부분적으로 나오고, 요한계시록은 전체가 다 묵시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헤롯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파괴된다는 예수님의 말씀도 이런 묵시사상과 연관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사한 꽃으로 뒤덮여 있던 우리 집 마당의 꽃밭이 지금 참혹한 모습으로 변했다. 내년에 다시 꽃을 피우겠지만 지금은 묵시적 파멸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지금의 이 형태만 보면 얼마 전 꽃이 만발했던 모습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묵시사상은 종말에 일어날 우주론적 대파멸에서만이 아니라 지금 이미 우리의 삶 중심에서 현실이 되어 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묵시사상과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파국을 목도하기도 하고 직면하기도
합니다. 날아와 꽂히는 뉴스들과(프랑스는 꼭 시리아로 날아가
공격을 해야만 하나요,,다른 방법은 없었을까요...), 또 일상에서 직접 겪는 것들에서
생성보다는 소멸, 파멸이 우리의 세계를 지배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가 들수록 더 이러한 것에 민감해지는 것인지..
그래서 그런지 요즘들어 가장 즐거웠던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보니
얼마전 호수에서 보았던 잉어떼들과 오리떼의 활발한 움직임이었어요..
자연은 참,, 오늘같은 날은 참으로 변덕스럽다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하늘이 땅바닥에까지 내려와 압사당하는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