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0일
마지막 식사
지난 설교의 주제는 추수감사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묵시사상에 기초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였다.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를 따라가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설교 후반부에서 추수감사절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했다. 아래와 같다.
오늘은 2015년 추수감사절입니다. 먹을거리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모두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찬송을 부르고 함께 마시고 먹는 축제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에게 즐거운 날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추수감사절은 두려운 날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지구가 더 이상 먹을거리를 생산하지 못하는 묵시적 대파국의 순간이 반드시 오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더 이상 먹고 마시지 못하는 죽음의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이게 명백한 사실이라면 추수감사절은 오늘의 한끼 식사가 마지막일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돌아가는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하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유월절 만찬을 대하는 심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삶을 서로 공유하고 연대하고 누리는 이들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묵시적 대파국과 같은 세상에서도 예수 신앙을 지켜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에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보십시오.
추수감사절은 오늘의 한끼 식사가 내 인생에서 마지막일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을 회복하는 절기라는 점을 짚었다. 단순한 종교적인 감수성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실체적 진실을 말한다. 개인이 더 이상 밥을 먹을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것만이 아니라 멀거나 가까운 미래에 인간 후손들이 지구에서 더 이상 먹을거리를 마련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런 말이 실감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일상 안으로 퇴락해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 쫓겨서 아무 것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잡는 것에만 열정을 쏟다가 자신의 운명과 미래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 집에 불이 난 경우에 대다수 사람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까지 집에서 들고 나오다가 결국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매 끼니가 나에게 마지막 식사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