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5일
일상의 범람
하나님을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일상의 범람이라고 설교에서 짚었다. 그런 현상을 하이데거 용어로 바꾸면 ‘일상에로의 퇴락’이다. 일상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냐, 일상 없이 인간의 삶을 말할 수 있냐, 하는 반론이 가능하다. 옳은 말이다. 먹고, 일하고, 돈 벌고, 사람들을 만나고, 돈을 쓰고, 취미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구도정진을 목표로 하는 수도원이나 절간도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일상의 범람, 또는 일상에로의 퇴락이라는 말은 일상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일상을 통해서만 자기의 삶을 확인하는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다. 끊임없이 돈을 벌고 저축하고 물품을 구입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넓혀가는 것으로만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삶의 태도가 거의 무한한 욕망으로 작동된다. 이런 이들에게는 일상의 축소가 바로 삶의 축소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상을 확대하려고 한다. 우리자신이나 주변을 조금만 살펴보면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별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친구들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고, 습관적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자식의 일에 과도하게 매달린다. 그런 일에 매달리다가 언젠가 죽는다.
신앙생활도 이런 방식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회 일에 자기 삶의 모든 에너지를 몽땅 쏟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지만 하나님보다는 일에 매달린다. 수많은 교회 모임을 만들고, 조직하고, 이벤트를 계획한다. 이런 사람은 신앙적 일상이 없으면 교회생활을 견디지 못한다. 교회의 여러 가지 모임과 사업 자체가 무의미하다거나 오직 기도와 예배만 드리는 것으로 신앙생활이 충분하다는 말도 아니다. 신앙적인 일상이 거품처럼 한 사람의 영혼 위에 범람하는 것의 위험성을 짚은 것뿐이다.
죽음은 일상으로부터의 완벽한 해방이다. 그게 영원한 안식이다. 일상으로 점철되는 오늘의 삶 한 가운데서 우리는 이런 삶의 태도를 어떻게 당겨서 살아낼 수 있을까? 이게 가능할까? 말장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