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7일
신앙적 화두
어제 설교의 마지막 단락에서 한 문장을 인용하겠다. “그런 화두를 붙들고 꾸준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마치 알에서 깨어난 어린 새가 날갯짓을 연습하다가 어느 날 저 절벽 아래나 높은 나무 아래의 허공으로 자기 몸을 날리듯이 하나님의 무한한 품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런 표현이 어떤 분들에게는 엄청 낯설게,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우선 화두라는 말이 그렇다. 선승불교에서 쓰는 용어다. 그들은 ‘화두 잡는다.’는 말을 한다. 어떤 주제를 하나 붙들고 해결될 때까지 질문하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수행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낙엽 떨어지는 것도 화두가 된다. 깊은 겨울 산사에 내리는 눈도 그렇다. 고양이가 쥐를 잡는 것도 화두가 된다. 그것을 화두로 잡을 때는 다른 생각을 일절 배제해야 한다. ‘이게 뭐꼬?’라는 질문에 완전히 휩싸이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이런 방식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예배를 드리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옳은 말이다. 종교생활과 종교경험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그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종교의 세계를 만든다. 예배도 좋고, 기도도 좋고, 찬송도 좋고, 전도도 좋고, 교회 봉사도 다 좋다. 물론 신학공부는 더 좋다. 그러나 그 모든 종교행위가 결국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과정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을 좌고우면 없이 한눈팔지 않고 붙드는 신앙적인 태도를 가리켜 ‘화두 잡는다.’고 말할 수 있다. 표현을 다르게 할 수 있어도 개념은 바로 그것이다.
동양종교와 서양종교의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기독교에는 이런 부분이 약하다. 예수 영접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충성하고 봉사하는 쪽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 예수가 왜 메시아인지, 부활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누군지에 대해서 죽을 때까지 질문해야 한다. 이런 질문이 믿음을 흔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풍성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