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5일
하나님의 기쁨
목사로 사는 즐거움의 하나는 설교다. 회중들이 설교에 은혜를 받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본인이 설교행위를 통해서 성경의 세계를 늘 새롭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즐거움 없이 목사로 산다는 것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보다 오히려 불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나이가 들면서 이런 즐거움이 늘어난다. 이제야 신앙적으로 철이 드는 건지.
스바냐는 흑암의 시절에도 하나님이 남겨놓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이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이다. 이들로 인해서 하나님이 즐거이 노래하고 기뻐한다는 것이다(3:17). 놀라운 표현이다. 보통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기뻐하는 것인데, 이번의 경우에는 거꾸로 하나님이 사람으로 인해서 기뻐한다는 것이다. 이런 표현도 문학적인 것이다. 어떤 신앙의 깊이에 들어갔을 경우에 감히 말할 수 있는 문장이다.
그 신앙의 깊이는 하나님과의 밀착관계를 가리킨다. 진실한 연인관계와도 비슷하다. 이런 신앙의 깊이는 주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나 십자가의 성 요한 같은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순교자 스데반도 이런 계통에 속한다. 그는 숨이 넘어가는 장면에서 하늘을 경험했다.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있다고 말한 바울에게서도 이런 신앙을 찾아볼 수 있다. 판넨베르크 표현으로 ‘만물을 규정하는 현실성’인 하나님을 영혼의 차원에서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를 기뻐한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자가 깊이 사랑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