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일
생명, 최초의 30억년(1)
지난 몇 달 동안 혼자 밥을 먹는 경우가 생길 때 자투리 시간으로 조금씩 읽던 앤드류 놀(Andrew H. Noll)의 <생명, 최초의 30억년>을 얼마 전에 끝냈다. 여운이 깊고 길다. 좋은 책, 또는 자신의 영적 코드에 맞는 책을 읽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원서 제목은 LIFE ON A YOUNG PLANET - The First Three Billion Years of Evolution on Earth-(젊은 행성의 생명 -지구 진화의 첫 30억년)이다. 김명주 선생의 번역인데, 번역 실력이 출중해 보인다. 전문용어와 개념 외에는 349쪽에 이르는 전체 책을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앞으로 당분간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을 두서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소개하겠다. 첫 번은 이 책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마지막 문단이다.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은 인간의 자아인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처음부터 특별한 존재로서 창조된 것도 아니다. 앞으로 행성탐사는 우리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아니 적어도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줄지 모른다. 하지만 천문학과 진화론이 얼마만큼 이러한 자아인식을 빼앗아간다 하더라도, 생태계는 이것을 되돌려 놓는다. 지금 이 지구는 인간이 지배하고 있다. 누구, 또는 무엇이 생명 역사의 앞 장들을 썼는지는 몰라도, 다음 장을 쓰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우리가 행동을 하고 하지 않음은 우리의 손자손녀들과 그들의 손자손녀들이 살아갈 세상을 결정할 것이다. 부디 관용과 겸손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되기를...(349쪽)
앤드류 놀은 ‘손자손녀들과 그들의 손자손녀들이 살아갈 세상’을 내다보며 글을 끝냈다. 생물학자로서 말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다. 인간이 과연 그런 미래를 염두에 두고 선택할 것인지는 그렇게 확실한 게 아니다. 21세기 문명을 보더라도 오히려 묵시적 대파국의 개연성이 더 높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앤드류 놀의 책은 많이 읽혀야 한다. 정치인들과 목사들과 신부들과 사업가들은 지구생명의 역사를 세밀하게 아는 게 좋다. 자기 주제를 파악하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의 기준이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