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1일
영혼의 졸음
지난 설교 마지막 단락에서 영혼의 졸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변화 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의 변모 순간에 졸다가 깨어서 그 장면을 목도했다고 한다. 초막 세 채를 짓자는 베드로의 발언은 잠결에 나온 허튼 소리다. 누가복음 기자가 삽화처럼 처리하고 있는 제자들의 졸음은 무슨 의미인가? 영혼의 졸음이라는 말은 또한 무엇인가?
답은 뻔하다. 세상살이에 정신을 팔아서 하나님의 말씀에 둔감한 사태를 가리킨다. 이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충분한 답변은 되지 못한다. 세상살이만이 문제가 아니다. 교회생활도 문제다. 제자들이 세상살이에 한 눈을 판 게 아니라 예수와 함께 지내면서도 변모 순간에 졸았던 것처럼 우리도 교회생활을 나름으로 열심히 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말씀에는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있다. 세상살이에 빠지는 거나 교회생활에 빠지는 거나 빠지는 거는 다를 게 없다.
교회생활의 매너리즘의 매너리즘도 우리의 영혼에 위험한 요소다. 그것은 교회생활 자체를 신앙으로 여기는 것이다. 장로라는 교회 직분을 받게 되면 상황이 더 나쁘게 된다. 그 직분으로 인해서 자타의에 의해 교회의 온갖 메커니즘에서 한발자국도 옮기지 못한다. 교회에도 사람이 모이고 조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교회 메커니즘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 안주하는 한 영혼의 졸음은 피할 수 없다. 한국교회 장로들 중에서, 그들 중에서는 정치 장로도 많은데, 하나님에 관해서 실제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이들은 현재와 같은 교회 메커니즘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정말 저를 포함해서 하나님께 관심을 갖는 신도들은 얼마 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생활을 뜨겁게 했지만
그게 모두 저의 종교적 만족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큰 경험을 한 후 삶의 패러다임이 변하게 됐지만 지금 저를 포함한 수많은 교회의 현실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취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정말 사람은 자기집중에서 벗어날 수 없나 봅니다. 죽을 때까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