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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1일
암호
어제 설교 ‘죽임 당한 어린 양’ 앞부분에서 요한계시록은 암호와 같다고 말했다. 사실은 요한계시록만이 아니라 성경의 모든 대목들이 다 암호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암호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창 22:1절 이하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려고 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걸 명령했다고 창세기 기자가 말한다. 일단 화자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가 그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전해들은 것도 아니다. 오래된 전승을 그는 그렇게 적은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을 내렸다는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암호다. 암호는 해독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오해받기 안성맞춤이다.
많은 경우에 목사들이 이 이야기를 문자적으로 그대로 전한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바치는 태도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그러면 하나님이 다른 것을 준비해 주신다고,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조상이 된다고 강조한다. 이런 말씀에 감동을 받으면 집을 팔아서라도 교회당 건축에 힘을 보태고 싶을 것이다. 그런 희생이야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뭔가를 잘못 알고 그렇게 하면 어리석은 일이다. 끔찍한 인신제사에 관한 이 암호를 우리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