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2일
‘내 양’
요 10:26절에 따르면 예수가 유대인들을 향해서 ‘너희는 내 양이 아니므로 나를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가 실제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그렇다고 보기는 힘들다. 예수가 경우에 따라면 단호하게 어떤 이들을 비판하기는 했지만, 이번 경우처럼 단정적으로 ‘내 양이 아니다.’고 말씀하신 적은 없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공동체의 신앙고백이다.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의 모든 말을 예수 자신의 말로 볼 수는 없다. 예수 생전에 아무도 예수의 말씀을 기록하지 않았다. 기록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예수에 의해서 소명을 받았고, 출가할 정도로 예수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훗날 세계 역사가 예수에 의해서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기독교 공동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예수의 어록이 교회에 나돌기 시작했다. 그 어록에는 예수가 직접 한 말도 있고, 그렇지 않은 말도 포함되었다. ‘내 양’ 운운은 후자에 가깝다.
요한공동체는 예수를 부정하는 집단과 대립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은 요한공동체만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 전반에 속한다. 다만 요한복음이 가장 늦게 기록된 복음서라는 점에서 좀더 유별나다. 요한복음 기자는 그 상황을 해명해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영지주의적 시각이 어느 정도 내포된 ‘내 양’이라는 단어다.
영지(靈知)는 영적인 지식이라는 뜻인데, 진리에 대한 인식이 비밀스럽게 소수에게 주어진다는 말이다. ‘내 양’이 바로 그런 인식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다. 신약성경에는 이런 영지주의 흔적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필요에 따라면 부분적으로만 나타난 현상이고 전체적으로는 기독교가 영지주의를 철저하게 배격했다.
질문 잘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냐, 하는 질문이지요?
단답으로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요.
일단 이렇게 말씀드리겠어요.
성경은 보물을 담고 있는 그릇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말이냐,
하는 질문이 나오겠지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됩니다.
큰 틀에서 그렇습니다.
대답이 추상적으로 들릴 겁니다.
이런 걸 직접 말하기가 어려워서 그래요.
이렇게 말해야겠군요.
하나님은 직접 사람들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람(성서를 기록한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성서를 기록한 사람은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그런 시대의 상황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비아 어딘가를 보면
이런 것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한군데만 링크 해놓을 테니
시간 날 때 읽어보세요.
좋은 주일을...
http://dabia.net/xe/index.php?mid=study2&category=487&document_srl=8233
http://dabia.net/xe/index.php?mid=study2&category=487&document_srl=8233
끼어들어 죄송합니다. 은나라님이 일반 신자 분이신거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한 말씀 올리자면,
저의 목회 경험으로 볼때에 은나라님처럼 질문과 답을 글로 주고 받는 형태로는 사실 너무 갈길이 멀다고 해야 할 듯 합니다. 할 수 만 있다면 우선 다비아에 있는 많은 신학적 내용들을 공부 하는 것도 중요 한데요(온라인), 그것보다 더 해야 할 것이 있다면 정목사님 같은 방향성을 소유하신 목사님(교우)과 많은 대화(질답)를 하셔야 할 듯(오프라인) 합니다.
몇 분 안되는 저희 교회 교우님들을 이런 방향성으로 돌려 놓는데에 약 7년여가 소요 되었습니다. 물론 이 곳 다비아 신학마당에 교재들을 사용 하였구요, 어떤날은 몇 시간씩 피튀기는 설전을 벌이다 끝나기도 했죠.
암튼 많이 질문 하시고 많이 충돌 하시며 또 많이 고민 하셔야 되겠더라구요. 그래야 비로서 신앙과 삶이 어떻게 동질선상에 있는지에 눈이 떠지게 되는것 같습니다. 거기에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저였기에 이런 말씀드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피튀기는(?) 설전의 시간들이 있어야 되는데요, 우리 한국교회는 신자들은 고사하고라도 목사들조차 이런애기 안해요. 만나면 종교정치 얘기, 먹는얘기, 사우나얘기 하다 끝난답니당ㅠㅠ
우린 그걸 끝내고 먹으러 가죠 ㅎㅎㅎㅎ
질문이요? 3년동안 무진장했죠.. 어떤분과, 그분이 정목사님을 소개해 주셨고, 그때부터 거의 날마다 올려주신 글들을 읽지만 말씀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것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이제 조금씩 이해가 되는데.. 현교회에서 자꾸만 성경무오설을 섞어서 설명하니까 헷갈립니다.
어느게 맞는지를 모르겠고, 어디에 권위를 두어야 할지 모르겠고, 현재 그렇습니다.
오늘도 질문을 했지만, 문자 그대로의 답만 들었을 뿐 입니다.
계시록설교를 하시는데.. 구름에 대한 설명이..정목사님과 너무나 많이 다름니다.
제가 질문한건 예수님이 승천할때..
제자들을 비롯하여 500명이 예수님 승천을 봤다고 성경에 설명이 되어 있는데..
그 당시 본것을 직접 기록한것이 아닌것일텐데.. 이 승천이 사실인가?를 여쭈었거든요.
아니면 다른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가? 승천후 이것을 성경으로 기록하기까지 기간이 있었을텐데..
이 승천이 사실이라면..
그때 당시 승천을 목격한 이들에게 일일이 물어보아서든 구전으로든 들어서 기록으로 남긴건가?를 물은건데..
성경에 있는 문자 그대로가 맞다라는 답입니다.
그래서 정목사님의 글중에 구름에대한 설명을 보았습니다.
정목사님은 '하늘, 구름'을 우리가 보는 하늘, 구름이 아닌 궁극적인 절대적 생명의 세계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설명하기를..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런 신화적 방식으로..
묵시사상이라는 장르의 방식으로 우리가 예상할수 없는 생명을 기다리며 살았기에..
승천한 예수가 구름타고 다시 오신다는 기독교 재림신앙을 근본적인 생명의 문제와 직결시켜서 생각했다..
부활로 궁극적 생명을 선취하신 예수님은 은폐된 생명의 세계인 하나님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오신다.
그사실을 요한은 이렇게 표현했다. " 그분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라고..
설명해 주십니다. 아주 명확하게..
근데 저는 또 궁금증이 발발되는거죠..또 다른..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말만 주절거렸네요.. 하도 답답해서..
과거에 정목사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셨던것이 생각 납니다. "잘 하고 계십니다"
은나라님도 잘하고 계시는겁니다. 주님이 하시니 두려울게 없습니다. 정작 두려운것은 공부하지 않는 아집과 편견에 사로 잡혀있는 것입니다. 그걸 두려워 하십시요. 주님의 은총이 풍성하시길~~~^^
기계는 만든대로, 사람이 시킨대로 돌아갈 뿐입니다.
기계의 빈틈은 곧 사람의 빈틈입니다.
오히려 인간의 이런저런 로직의 헛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점에서 정직하고 신뢰할만 합니다.
뭐 저는 그렇게 푹 빠져있지 않지만, 밥먹고 컴퓨터앞에 붙어사는 너드같은 사람들은 이런 매력에 빠지는 게 아닐까 하네요. 이런점이 어쩌면 신학이나 인문학보다 공학이 가진 매력일듯요 ㅋㅋ 간결하고 명료하고 투명한 논리들 ... 문득 떠노르는 비트겐슈타인 ... 그 시대에 컴터가 지금처럼 발달했다면 세상을 바뚤 뭔가 나왔을듯요 ..^^
만일 이 문제에 대한 잣대와 기준이 없다면 성경도, 누군가 받았다는 영감도 모두 성경적 권위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측면에서 볼때에 성경은 모든 인생이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어떤 믿음과 확신에 대하여 맹목적이 되지 않도록 안내하는 기준 이며 잣대 인것으로 충분 한것이니 이에 더 이상의 다른 어떤 잣대도 불필한 것이고, 인생은 그 성서를 통해 자신에게 들려졌다 하는 모든 현상들을 비추어 진위를 분변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인지 한다면 오늘 아침 들었던 음성이 더이상 성경이 될거이냐 말것이냐로 애쓸것이 아니라, 성경에 비춘 다양한 신학작업(이성)으로 검토하는 삶의 지혜가 요청 되다 할것입니다.
전 그냥 과감하게 비신앙인의 눈으로 다시 성경과 기독교를 바라보는게 가장 빠른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시 시작하세요. 예수를 몰랐던 거 처럼 ..^^
연인들도 이사람이 정말 내사람인가를
헤어지고 나서 깨닫는다잖아요.
그까이거 신 ... 발로 차버리고 똥으로 뭉게 버리세요.
두렵나요? 두려워서 신을 믿는 거 아니잖아요.
그게 아니라면 오늘부터 다시 시작해보세요.
똥으로 뭉게도 발로 짓밟아도
오롯이 빛나고 있다면 진짜 내하나님 내구원 나의 신이겠죠 ...
만일 반대라면 님은 애초부터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고 예수의 양이 아니였던 사람이겠죠... 어차피 그렇다면 뭐 ... 그냥 예수에 얽매이지 말고 시원하게 사는게 좋을거 같아요.
아니면 붓다도 좋은 스승인건 확실한거 같으니 그쪽도 좋은거 같고 철학도 나빠보이지 않고요 .. ㅎㅎ
아무튼 신을 믿거나 안믿거나 기독교인이거나 아니거나 예수를 알거나 모르거나 모든 만물과 사람이 가는 모든 길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거 같긴합니다.
어쨌거나 철저하게 비종교인이 되어보시길 ...
stay님의 답변은 질문하신 분과 답변하신 분들의 본래 목적에서 좀 벗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다들 각자의 삶에서 신앙의 길을 고민하며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뭔가 대단한 걸 터득하신 것처럼 굉장히 쿨한척 "나처럼 이렇게 해보라"는 식의 말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애초부터 하나님과 상관없는" "예수의 양이 아니었던" 등과 같은 표현은 이분이 신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stay님 자신부터 좀 더 고민과 사유와 공부가 필요할 것 같네요.
이런 댓글은 안적는게 더 나을거라 생각하지만 민폐를 무릎쓰고 적습니다.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뭔가 대단한걸 터득하신거 처럼 ...' 이라면서
'가서 공부나 더하고 와라' 라고 이미 비꽜으면서,
'기분상했다면 죄송하다' 는 위선은 뭔가요 ..ㅎㅎ
아무튼, 제 댓글이 눈에 거슬럭 거렸다면 죄송합니다.
약간 제 말투가 이너넷에서 중2병 걸린놈 같아서 그런 거 같은데,
다비아는 특성상 말을 좀 조심하긴 해야겠네요 ^^ 편하게 쓴다는 것이 경망스러웠죠? ㅜㅜ
그렇다고 제 요지는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무오설, 축자영감설 같은 문자주의에서 벗어나기가 너무 힘들 땐 그냥 시작지점으로 돌아가는게 좋지 않겠냐는거에요.
성경도 문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런 문자는 그림자인데, 성경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얻을 수 밖에 없는 거잖아요.
역사비평이나 해석학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지간에,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한번 결단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약간은 니체적인 마인드에서 까짓거 아니면 마는 거죠 ...
말씀하신대로 쿨하게 ...
쿨하면 속편해지거든요 ... ^^
여러번 고민하다.. 큰 맘먹고 메일로 질문 드렸더니..
다른사람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질문이라 하셔서 이곳에 다시 질문올립니다.ㅎ
답변 듣고 싶은 마음에 퇴근후 바로..^^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올릴께요..
설교에서는..
"내 양" 이라는 표현을 목자와 양과의 특별한 신뢰관계로서,
이런 관계에서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수 있다고 하신 반면에..
묵상에서는..
예수가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는 내양이 아니므로 나를 믿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하시고,
이 말씀은 요한공동체의 신앙고백이다..고 하셨는데,
이 묵상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목사님의 설교나 다른글들을 읽으면 거의 항상 드는 생각이라고 하는게 맞을거 같습니다.(솔직히)
물론 예수의 말씀을 따라다니면서 기록한것이 아닌것만은 확실하지만..
자꾸만 예전에 배웠던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 말씀으로 배워서..
이런 글들을 대할때마다 혼란스럽고 헷갈리는 부분들이 없쟎아 있습니다.
지금 교회에서도.. 성경은 절대적인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치고 있는데요.
정목사님 설교나 글들을 대할땐..
구약은 역사서, 시가서, 등등으로..
신약은 공동체나 개인의 신앙고백서, 서신서, 등등..으로 말씀하시는거 같거든요.
이렇게 말씀하시는것을 그대로 받아서 이해해야하는지?
아니면, 이렇게 이해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이해해야 하는지?
그것을 여쭈고 싶습니다.
불경스런 질문이라.. 많이 고민했고, 그래도 궁금하고 제대로 알고싶어서 큰 용기내어 질문드려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