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5일
하나님은 사랑이라
어제 설교 도입부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요일 4:16절을 인용했다. 이 구절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듯 말듯하다. 하나님이 사랑의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다. 문제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사랑의 능력이 어떻게 작동되느냐, 또는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 기독교인이 있다. 그 식당 옆에 또 하나의 식당이 있다. 서로 경쟁하는 중이다. 경쟁이라도 서로 윈윈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시중의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거의 ‘죽기-살기’(제로-섬) 상황으로 몰렸다. 둘 중의 하나는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다. 사랑하라는 말을 그대로 실천한다는 생각으로 기독교인이 자기 식당을 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쟁적인 세속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의 능력으로 경험할 수 있나?
위에서 예를 든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도 많다. 어떤 기독교인이 숲속 2차선 도로를 운전하고 있다. 옆 차선으로 대형 트레일러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 차선 앞으로 사슴 한 마리가 뛰어들었다. 차를 왼쪽으로 꺾으면 트레일러와 충돌하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큰 가로수와 부딪치는 상황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사슴이 아니라 사람이 뛰어들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절박한 상황이 흔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상황은 우리 앞에 반복된다. 습관적으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을 계속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사랑하라는 말이 당위로서는 옳지만 구체적인 삶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어려운 문제다. 기독교인은 매번 구체적인 삶을 투쟁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