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일
꽃가루의 가벼움
요즘 꽃가루가 천지를 뒤덮기 시작하고 있다. 앞으로 당분간 한반도는 꽃가루가 지배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소나무 꽃가루가 으뜸이다. 자동차 보닛, 마당, 현관문 손잡이에 노란 꽃가루가 소복하다. 창문을 열면 방안 깊숙이 들어온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꽃가루 알러지가 없지만, 알러지가 있는 분들은 외출하기가 겁날 것이다.
꽃가루가 바람에 자유롭게 비상하는 것은 자신들의 생존 전략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의 후손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다. 가지 못할 곳이 없는 꽃가루의 능력은 가벼움이다. 그 가벼움이 부럽다.
우주의 크기에서 볼 때 우리 자신도 꽃가루 한 알과 다를 게 없다. 실제로 그렇다. 꽃가루 한 알이 없어져도 세상이 굴러가는 것처럼 자기가 없어져도 세상은 여전히 잘 굴러간다. 그게 인간의 엄중한 실존이다. 자신의 삶을 가볍게 여기는 게 최선이다.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 자기를 무겁게 만들면서 살아간다. 그 무거운 삶이 자기 영혼을 질식시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다.
나는 목사로서 평생을 살았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것이다. 많은 목사들이 목사직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인다. 목사로 인정받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 날 것처럼 불안해한다. 옛날 검투사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갑옷을 입고 있는 형국이다. 유형무형의 딱딱하고 무거운 외피 안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대형교회 목사들의 영혼이 얼마나 무거울지를 생각하면 연민의 정이 느껴지기조차 한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업적에 자부심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오늘 글의 분위가 어울리지 않지만 문득 생각나는 시가 있어 올린다. 박목월의 ‘윤사월’이다. 외딴 집 그녀는 송화가루 날리는 그 시절에 무슨 소리를 듣고 싶은 걸까?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오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직이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이고
엿듣고 있다.
목사님의 묵상 글과 좀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전직 전도사, 신학을 공부한 사람에게 주변에서 기대하고 바라는 무거움도 있네요.
저는 정말 그것을 가벼이 여기고 살아가는데 주위에서 자꾸 제가 무슨 죄를 짓고 사는 것처럼.. 쩜쩜쩜...
사명 맡은 사람이 사역을 안한다고... 주님의 일을 먼저 해야 복을 받는다고...
보수적 신앙관으로 가득찬, 제가 경험하는 '삶의 자리'는 거시기 하네요.ㅎㅎ
어쨌든 꽃의 가벼움이라는 제목으로 무슨 글이 쓰여있을까 궁금했는데,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목사님 댁 정원에 관한 글이라 상상했었거든요. 꽃가루 이야기가 결국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것에 '헐' 했어요.
자신의 삶을 가볍게 여기는 것. 영혼의 만족을 누리는 것. 결국 같은 것인데 비워야 할 것과 채워야 할 것이 반대로 되는 것만 같네요.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해야겠죠.^^
가벼움은 자기 비움, 겸손,
바람인 성령님께 온전히 내어 맡김일텐데
그래야 살 수 있는 것인데
그게 잘 안되니...
꽃가루를 스승으로 모셔야겠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