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9일
마라나타
이번 주일 설교 본문 계 22:20절에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은 고전 16:22절에 나오는 아람어 ‘마라나타’와 똑같은 뜻이다. 마라나타는 ‘우리 주님은 오신다.’ 또는 ‘우리 주님이 오시기를!’이라는 뜻이다. 우리말 성경 개역개정에는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로 번역한 뒤에 각주로 ‘마라나타’를 달아두었다. 이런 아람어는 중요하니까 본문에 그대로 살려두고 각주로 뜻을 다는 게 더 좋았을 듯하다.
초기 기독교의 마라나타 신앙은 유대인들의 메시아사상과 밀접하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와서 세상을 정의와 평화로 다스리고 자신들을 세계의 으뜸이 되는 민족으로 인도할 것으로 믿었다. 그런 사상의 중심에 ‘인자’ 개념이 놓여 있다. 인자(人子)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유대인들은 인자가 세계 심판주로 오실 분으로 생각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말하는 인자가 곧 예수라고 생각했다. 예수를 절대 생명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전도관의 박태선, 통일교의 문선명, 신천지의 이만희 등을 절대생명이라고 믿는 이들은 그들 교주들을 재림주라고 생각할 것이다.
마라나타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아람어다. 아람어는 예수가 살던 당시에 그 근방 대다수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다. 예수도 아람어를 사용했고, 제자들도 그랬다. 고전 16:23절 외에도 복음서에 가끔 아람어가 등장한다. 에바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등등이다. 예수가 일상 언어로 사용한 아람어로 복음서를 읽으면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아람어를 쓰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는 신앙의 세계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우리의 주가 오실 것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가 가리키는 절대생명의 세계를 실질적으로 경험하고, 이제 다시 자기 자신의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