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0일
기독교의 ‘세계’
지난 설교에서 나는 신자들이 기독교 신앙의 세계가 아니라 자기 삶을 확대하는 것에 주로 관심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신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기독교와 관계없는 세계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교회에 나오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은 신자들도 기독교의 중심 세계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신앙 정보에 치우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신앙을 방법론(노하우)에서만 접근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사순절이나 성탄절 즈음에 릴레이 기도 모임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있다고 하자. 그들은 자기에게 해당되는 시간에 기도를 하는 것으로 괜찮은 신자 생활을 한다고 여긴다. 성경읽기도 마찬가지다. 성경 통독이나 성경 쓰기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 한국교회에서 대부분의 신앙교육이 방법론에 치우친다. 기도하는 방법은 가르치는데, 기도 행위 자체에 대한 가르침은 없다. 기도 영성을 알게 되면 이벤트 방식으로 진행되는 교회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게 되니까, 교회는 어쩔 수 없이 방법론을 기도 자체인 것처럼 가르친다. 교회 생활 방법론 공부가 무의미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건 교회 형편에 맞춰서 진행시키면 된다. 거기에 머물러서 기독교의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게 문제다.
기독교 세계라는 표현이 어떤 이들에게는 낯설게 들릴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 세계는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비밀스럽게 유동하는 어떤 힘이다. 그 세계는 깊고 넓고 아득하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가 그와 같이 깊고 넓고 아득하다. 바둑과 음악과 예술의 세계도 그렇다. 재림 신앙의 세계가 얼마나 깊을지를 생각해보라.
기독교 신앙을 정보로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세계에 들어가 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고 오히려 그 지식이 심층적이고 심오한 이 세계를 단편적으로 재단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방법론에 치우친 채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온통 신앙생활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자기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하나님이 아닌 자기중심성만 더 강화되지 않겠습니까. 예수에게 일어난 십자가 처형이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 담겨있다는 사실조차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주술적으로 믿는다고 반복할 수는 있어도 심오한 진리를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네요. 죽을 때까지 부분적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도 집에가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댓글을 달고 있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