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0일
성령의 피조물
교부시대부터 교회는 세 가지 개념으로 규정되었다. 하나님의 집,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피조물이 그것이다. 성령의 피조물이라는 말을 쉽게 생각하면 쉽고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다. 오늘 우리는 약간 어려운 쪽으로 생각해보자.
우리가 일반적으로 교회라고 부르는 조직이 역사 안에 등장한 시점이 언제인지 확정하기는 어렵다. 예수 죽음, 부활, 승천 이후 고아처럼 남겨진 제자들과 몇몇 추종자들이 예수를 기억하면서 모임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아예 생각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교회가 역사에 등장했다. 제자들과 추종자들과 나중에 전도를 받은 이들이 교회 조직을 만든 것이다.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은 표면적으로는 사람들이 교회를 만들었지만 그 과정 전체가 성령에 이끌림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회를 ‘성령의 피조물’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말이 상투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지금도 교회를 설립할 때 성령이 인도하셨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문제는 성령의 정체성과 맞물려 있다. 성령의 피조물이 교회라고 한다면 교회는 당연히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특성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령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성령이 전쟁을 불사하는 영이라면 교회는 전쟁에 찬성해야 한다. 십자군 전쟁은 이런 신학적 토대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겠는가.
성령의 피조물이라는 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 운영의 주도권이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것도 뻔한 소리로 들리긴 한다. 성령이 이끈다고 하더라도 교회 문제를 결국은 사람이 결정해야 하는 것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끊임없이 성령에 의해서만 시작되었고, 유지된다는 사실로 돌아가면 교회의 왜곡과 변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오늘 한국교회는 과연 성령의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얼마나 마음을 두고 있을까? 교회성장 만능주의에 빠진 교회를 성령의 피조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