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일
바알숭배
바알은 농사의 신이다. 비와 바람을 비롯한 농사에 관계된 자연현상을 지배하는 신이다. 성경에도 바알숭배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종종 나온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요 2:23). 이어지는 구절도 비슷하다. 만약 이 구절의 출처가 성경이라는 것을 모르고 읽었다면 바알숭배를 다루는 우가릿 문서와 혼동을 느낄 것이다.
성경이 바알숭배를 여호와 신앙과 가장 크게 적대적인 것으로 평가하지만 당시에는 보편적인 신앙의 한 행태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생존에 필수적인 것은 먹을거리다. 먹을거리는 농사를 통해서 확보된다. 가능한 많은 식량을 확보해야한다. 풍년은 왕을 비롯해서 모든 백성들의 원하는 것이었다. 농사의 신인 바알을 그들이 숭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성경은 바알을 거부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종종 바알을 섬기곤 했다. 그들은 바알숭배를 거부하라는 선지자들의 외침과 바알을 섬길 수밖에 없다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느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똑같다.
바알은 손에 딱 들어오지만 여호와는 그렇지 않다. 바알과 여호와 사이의 차이를 찾기도 웬만해서는 힘들다. 위에서 인용한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바알과 여호와 사이에 교차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여호와가 자신들의 생존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섬길 수 없었다. 바알과 여호와 사이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다신론이냐, 일신론이냐 하는 데에 있다. 하나님을 유일신의 시각으로 본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하나님을 여호와로 불렀고, 하나님을 다신론의 시각으로 본 우가릿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알이라고 불렀다. 유일신론은 고대사회에서는 드물었다. 그래서 고대 이스라엘은 주변 다른 민족들과 끊임없이 싸울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는 유대교의 유일신론에 기초하면서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는 삼위일체 신론을 주장한다.
지금도 바알신(세상의 성공인 돈과 명예 등)과 진리와 생명의 하나님 사이에서
대부분은 당장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바알신을 따르고 있지요
좁고 가시밭 길인 예수의 길은 매력도 인기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 길에서 기쁨과 자유와 생명을 누릴 수 있으니 힘들어도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