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9일
울지 말라
나인 성 과부는 ‘울지 말라.’는 말을 예수에게서 듣는다. 이 여자에게만 필요한 말이 아니다. 우리의 실존이 이 여자와 다를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죽은 아들의 상여를 뒤따르고 있는 이 과부의 상실감이 바로 우리의 실존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조건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여기서 예외가 없다.
‘울지 말라.’는 예수의 말씀은 우리 삶에서 궁극적인 위로다. 아니, 유일한 위로다. 십자가에 달렸으나 삼일 만에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신 예수만이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고 설교에서 말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리와 하나님의 생명으로 들림 받은 자리를 경험한 자만이 인간의 상실감을 벗어날 수 있는 위로의 말을 할 수 있고, 그런 자의 말에서만 상실감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발휘된다.
우리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없다. 아무리 ‘울지 말라.’고 말해도 능력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냥 말만 그렇게 할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울지 말라.’는 말을 연습해야 한다. 연습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 그 말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진정성 있게 그런 말을 한다면 그 능력이 전달될 것이다. 성경 언어에는 그런 힘이 있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설교 행위가 ‘울지 말라.’는 말의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창조, 은총,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 나라의 전복성,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팔복의 말씀 등등, 이런 성경의 언어와 그런 세계와 그 능력을 바르게 배워서 전하는 연습을 꾸준히 한다면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울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에 사로잡힐 것이며, 그런 말을 전하는 역할을 충실히 실행하게 될 것이다.
"울지 말라"라는 주님의 말씀이 상투적으로 들리지 않고 참된 위로로 들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기연민이나 의미없는 위로가 아닌 생명이 담긴 위로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기를 !